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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서리 그늘의 경계로 겨우 알아본다 기둥 너머 꿈틀대는 새끼고양이 집을 빙 둘러보았다 민들레와 쑥부쟁이가 모서리를 지운다 창문 너머 공간은 명암이 없다 햇빛을 받으려는 듯 주변 빌딩은 높아져갔다 그늘 속에 잡초들이 죽어가듯이 이 집도 숨을 멈췄다 고양이, 귀뚜라미, 무당벌레, 움직임이 다들 하찮다 아니, 그들이 사는 공간이 하찮다 그렇게 저 위의 사람들은 내려다보겠지 한껏 날이 선 모서리가 두려워서 나 또한 돌아섰다 2018. 7. 12.
역지는 사지 나를 싫어하던 그 녀석도 무서운 건 있었다. 동네에서 두 살 많은 형, 어릴 적부터 덩치가 컸던 형은 여전히 두꺼운 팔로 위압감을 뿜었다. 내 뒤에서 끊임없이 뒤통수를 때리던 그 손이 멈춘 건 고작 그 형이 내 이름을 불렀기 때문이다. 이젠 내가 그 녀석을 싫어할 차례였다. 생각보다 그 놈은 힘이 없었고, 예상보다 그 형의 힘은 강했다. 쌓여있던 독기가 곪아 터진다. 나를 보는 줄도 모르고, 노래 불렀다. 그가 슬퍼하면 할수록, 춤을 추었다. 다들 즐거우리라 생각했다. 2018. 7. 10.
까까머리 12 mm, 아니 4 mm로 해주세요. 엉겨 붙은 채 무더기로 떨어졌다. 내 상념과 바꾸기에 적당한가. 못난 두상, 잡념이 하나 추가된다. 그 누나는 FTA와 머리카락을 바꾸었다. 이 후, 머리카락이 계속 자라났듯이 FTA도 그냥 진행되었다. 까까머리들의 집단 속에서도 우리는 멀리서 서로 알아보았다. 겨우 그 정도. 촛불 속에서, 종종 머리카락도 타올랐다. 신념, 한 올 한 올이 꼬여있는 단단함. 난 그저 슬픔과 맞바꿨다. 그러니 금세 자라지 수치심, 앞을 가리기 위해 머리를 길렀다. 온통 흰머리인 줄도 모르고 늦가을, 세상 모든 것이 버려질 때에 그냥 버려버리자, 자연히 썩어가도록. 2018. 7. 10.
무릎 굽었다. 그리고 멈춰버렸다. 주름이 쌓여 붙어버렸다. 습기가 스며들면 곧 썩어갈테지. 방석은 더 이상 필요치 않다 30년, 용접으로 먹고 살았다. 용접은 녹였다 붙이는 것이다. 우선 사라져야 한다. 수많은 철붙이들의 원한이 내 무릎에 쌓여갔다. 마디 없는 줄기처럼 방향을 잃었다. ‘고생하셨네요.’ 의사는 건조하게 말한다. 무릎은 끄덕이지 못했다. 누군가가 늘 필요해졌지만 할망구는 늘 나를 필요로 한다. 주름을 팔고 이사를 했다. 전용 침대는 날 수도 있다. 2018. 7. 7.
밀어내도 도통 멀어지지 않는다. 그러다 불쑥 안기고 말았다. 단맛, 하얀 가루가 날린다. 쓴맛, 뿌연 시야 속으로 보이는 시계 1초에 100번 고민한다. 앉은 자세를 연구한다. 왼팔과 오른팔의 겹침, 무게중심, 시야와 허리의 각도, 지속성까지, 그러다 또 불쑥 안겼다. 누가 흔들어 댄다. 난 흔들리며 피는 꽃, 하지만 아직 피기엔 이른 꽃. 물과 빛이 모두 사라질 때까지 나는 깨지 못했다. 입에 남은 가루의 맛이 쓰다. 2018. 7. 7.
큰집 큰 집은 바다 바로 앞이었다. 작은 방에 누워있으면 부서지는 파도소리가 들려왔고, 물이 다 빠져나간 갯벌까지 맨발로 다녀올 수 있었다. 추석 명절에 맞춰 방문한 태풍은 바다를 육지로 실어 날랐다. 모래가 가득 담긴 쌀 포대로 둑을 쌓아봤지만 모래는 바다 편이었다. 바다가 무서워진 것도 그 때쯤이다. 태풍이 지나간 후에도 파도는 여전히 집 앞에서 틈을 보고 있었다. 뭍에 대한 열망, 그 끝없는 반복과 실패, 그 부서짐과 하얀 거품이 혈관을 옥죄여왔다. 보름달이 뜨던 날, 온종일 내리던 비와 새로 생긴 강과 만을 가득 채운 바다는 결국 서로 부둥켜안았다. 이산의 상봉, 그 격렬함 속에 큰 집은 가라앉았다. 해가 뜨고 비도, 강도, 바다도 다시 돌아갔지만 자식들은 여전히 TV 속, 냉장고 속에서 뒤엉키고 있다.. 2018. 6. 24.
서랍을 열다 우두커니가 어울린다 주인 없는 책상은 치워지지 않았다 그저 구름만 생겼다, 떠나버렸다 태양이 구름 뒤로 가려지는 짧은 틈 속에 짙은 책상은 보였다, 사라졌다 그 분은 의자에 앉는 법이 없었다 참과 거짓은 때때로 변해갔지만 서랍 속엔 늘 같은 책이 들어있었다 '사람을 계속 사랑하고 싶다' 바람 속에 몹쓸 살모사가 실려왔다 그 분은 독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책상이 낡았다 서랍이 덜렁거리다 떨어졌다 낡은 책은 여전히 사람을 기다린다 2018. 6. 22.
[대기]Land/Sea, 바다에서 대기까지 2018. 6. 10.
[대기]Top to bottom, 지구의 대기 2018. 6. 10.
[7화]스승의 날 사진 출처 : https://pixabay.com/photo-2052868/ 사회를 투명하게 바꾸고 공정하게 진행되길 바라며 제정된 김영란법은 엉뚱하게도 스승의 날의 성격도 바꿔버렸다. 이제 스승의 날은 교사에 대해 감사(感謝)하는 날이 아닌 교사의 잘못을 살피고 부정을 감시하는 감사(監査)의 날이 되었다. 이에 많은 교사들이 스승의 날을 불편해하고 차라리 없애버렸으면 좋겠다는 국민 청원까지 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나의 성격을 너무 강조하면 되레 여러 부작용도 생기게 마련인데, 스승의 날을 앞두고 학생들이 장난스럽게 던지는 아픈 말들도 그 중의 하나다. “선생님, 카네이션 드릴까요? 아, 받으면 안 되죠?” 이런 비슷한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농담인양 교사에게 던지는 학생들이 얄미워 보일 수밖에 없건만,.. 2018. 5.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