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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개구멍 뒷사람에게 떠밀려 앞으로 나아간다 방향을 정할 수가 없어 빈틈을 계속 메우길 반복했다 기둥에 가로막힌 인파에 가로막히기 전까지는 그래도 방향성은 있었다 갑작스런 벽에 부딪히고 또 밀쳐지며 결국 돌기 시작했고, 북쪽은 남쪽, 동쪽은 서쪽과 같아졌다. 기둥 주위로 사람들은 강강술래를 시작한 것이다 옆 사람을 잡고 또 잡으며 충돌을 회전으로 막아냈다 발과 발이 끌리고 밟히며 먼지가 일었지만 사람들은 그 어울림을 즐기고 있었다 바다로 향하던 마음을 중력과 함께 떠나버리고 소용돌이와 함께 조금씩 가라앉았다 분지 중앙에 노인이 주저앉는다 그 주위로 사람들이 돌고 돌며 멀어져 간다 2018. 10. 15.
f’(x)=0 지하철 노약자석에 왜 우리는 앉으면 안 돼요? 선생님은 왜 급식을 자유롭게 퍼서 먹어요? 점심시간에 왜 외출하면 안 돼요? 의미 없는 행사는 왜 그렇게 많이 해요? 도서관에 만화책은 왜 이렇게 적어요? 우리 학교는 왜 샌드위치 날에 안 쉬어요? 우리 학교는 왜 이렇게 방학이 짧아요? 수학여행은 가봤던 곳인데 왜 빠지면 안 돼요? 선생님 수업은 왜 이렇게 졸려요? 그냥 안하면 안 돼요? 선생님은 담배를 피우면서 왜 우리는 피지 말라고 하세요? 우리 학교 교복은 왜 이렇게 안 예뻐요? 급식은 왜 맨날 똑같은 게 나와요? 수업 언제 끝나요? 좀 쉬면 안 돼요? 2018. 10. 15.
출경을 앞두고 속았었지, 중국 땅은 넓으니까 바다를 건널 수도 있겠구나, 했었지 방향은 뭐, 더 올라갈 수도 없으니까 대충 무언가를 팔아야 하는 일이라고 했어 간단한 장신구나 채소 같은 거 집은 따로 없어도 공동숙소에서 자면 되고 크게 멀리 갈 일도 없으니 몇 년 고생하고 바짝 벌면 두만강이 보이는 곳에서 살려고 했지 그 정도면 어머니도 보고 동생도 보고 그럴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 남조선으로 넘어온 건 도피였어 소문이 있었거든, 대사관으로 가면 한 숨 돌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 종착역은 아니라고 생각하며 살았지만 너무 오래 걸렸어 군인들은 한 시간이면 걸어갈 거리를 쳐다만 보며 산 세월이, 후회는 늘 끼고 살지 그래도 내년이면 자랑스레 떠벌리고 다니겠지 남조선도 별거 없다고 2018. 10. 15.
어느 직장인의 일상 언제나 발을 질질 끌며 퇴근한다. 바닥과 신발이 부딪히며 내는 마찰음에 지나가던 할머니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저 표정, 그 얼굴에서 탈출은 조금 더 지연됐다. 온몸은 식었으나 양말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나를 반기는 집 안 공기 속으로 그 열기가 퍼져나갔다. 눈살이 찌푸려진다. 씻고 싶으나 씻기 싫었다. 몸에 남은 자국들을 씻어내고 나면 곧바로 새로운 일상이 시작되고 또 다른 자국들이 덕지덕지 붙을 것만 같았다. TV는 즐겁고 유쾌한 일과 남일 같은 걱정으로 채워져 있었다. 그 낯설음에, 차라리 채널이 돌아가는 찰나에 위로를 받는다. 불도 끄기 싫었지만 내일 뜰 태양을 위해 아니, 내일 뜰 내 눈을 위해 일단 껐다. 여전히 방 안은 밝았지만 긴 일과를 마칠 준비는 끝났다고 할 수 있다. 눈을 감고 할머니.. 2018. 10. 12.
학교생활기록부 좋지 않은 말은 쓰면 안 되는 기록장 나쁜 행동도 미화해서 쓰는 소설집 하지 않은 일도 만들어 내는 창작물 특별히 잘한 행동은 기재 못하는 필터링 모든 행위가 목적지향적인 이상가의 삶 모든 시간을 합하면 4년이 되는 상대성 이론 글자 수가 아까워 가득 그득 채우는 구형 핸드폰 자기 자신을 공부하는 소크라테스 죽은 인물을 상대하는 조조-사마의 과대포장, 실속 없는 과자를 뜯어 질소를 마시고 포장지를 음미하다 버려지는 알맹이, 다시 포장지 속으로 밀어 넣는 상인과 행인, 비니루에 익숙해진 썩은 알맹이 2018. 10. 11.
파도 공기는 결국 물을 밀어냈다. 바다는 늘 고요했지만 하늘은 늘 창연했지만 이질의 경계는 늘 소란스럽다. 흔들리고 밀리고 돌고 돌고, 멀미 속에서 그대는 태어났다. 그대는 늘 떠밀리고 흔들려서 멈춰본 적이 없다. 그대의 울음도 늘 경계의 언저리에서 몇몇 힘 없는 존재들에게 들려왔을 뿐 하늘도 바다도 대수롭지 않았다. 그대는 그렇게 경계에서 나고, 조용히 죽었다. 허나 물은 결국 공기를 안았고 바다는 생명을 잉태했으며 하늘은 세상에 비를 내리고 갯바위 틈으로 새싹이 발아하는 기적과 함께 그대는 나고 죽었다. 2018. 10. 11.
[영상]선인고등학교 청소년과학상황극 '톡신' 공연 영상 청소년 과학상황극 '톡신' 본선 공연 영상입니다. 1. 자연선택설 2. 면역 3. 사회생물학 4. 원시인의 생활 5. 충치 6. 안경 7. 식곤증 8. 칼슘의 중요성 2018. 9. 30.
덕적도의 남쪽 하늘 2018. 9. 27.
쌩쌩한 아버지 아버지는 일주일 간 낮에 일 하시고 다시 일주일 간 밤에 일 하셨다 회사가 쉬지 않고 가동되기 위해서는 사람도 아무 때나 쉴 수는 없었다 주간과 야간 근무가 교차하던 날 좀처럼 잠을 이루기 힘드셨던 아버지는 아침 밥상부터 소주를 올리셨다 술 마시고 자고 나면 개운하지 않다,던 아버지는 금새 '한숨 붙이려면 마셔야지' 라고도 하셨다 늘 빈집에서, 오직 일 하기 위해서, 아버지는 꾸역꾸역 잠을 찾았다 꿈 속에서도 만날 사람은 곧 만날 김씨뿐이었지만, 그래도 그 영역 속으로 들어가면 안도의 반가움으로 젖어들었다 꿈은 두께가 얇은 벽이라 화장실 물소리, 구두 굽소리 때로 창 밖의 새소리에도 쉽게 허물어졌고 아버지는 다시 그 세계로 가기위해 얼마간 낑낑 거렸다 어린 시절의 나는 그 벽을 얼마나 허물었을까 나는 아.. 2018. 9. 13.
급객사 심장마비에 의한 급사입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객사하셨습니다.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잠깐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난 거란다. 다들 그의 사라짐을 다르게 설명했지만, 의사도, 경찰도, 목사도, 할머니도 내 눈을 마주치진 않았다. 난 그저 내일을 생각했다. 아주 먼 훗날까지도 내일 같았다. 조금 더 어른이 될 때까지 미뤄둘 수 있을까 얼마 남지 않은 그들의 흔적 속에 이물질이 끼어들지 않기를 혼자 먹을 밥상에 앉아 기도한다. 밑반찬은 최대한 아껴먹었다. 2018. 8.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