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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문화/나의 시

큰집

큰 집은 바다 바로 앞이었다.

작은 방에 누워있으면 부서지는 파도소리가 들려왔고,

물이 다 빠져나간 갯벌까지 맨발로 다녀올 수 있었다.

추석 명절에 맞춰 방문한 태풍은 바다를 육지로 실어 날랐다.

모래가 가득 담긴 쌀 포대로 둑을 쌓아봤지만 모래는 바다 편이었다.

바다가 무서워진 것도 그 때쯤이다.

태풍이 지나간 후에도 파도는 여전히 집 앞에서 틈을 보고 있었다.

뭍에 대한 열망, 그 끝없는 반복과 실패, 그 부서짐과 하얀 거품이

혈관을 옥죄여왔다.

 

보름달이 뜨던 날,

온종일 내리던 비와 새로 생긴 강과 만을 가득 채운 바다는

결국 서로 부둥켜안았다. 이산의 상봉,

그 격렬함 속에 큰 집은 가라앉았다.

해가 뜨고 비도, 강도, 바다도 다시 돌아갔지만

자식들은 여전히 TV , 냉장고 속에서 뒤엉키고 있다.

하얀 어둠 속에 이웃들이 떠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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