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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교육 칼럼

[7화]스승의 날

 

사진 출처 : https://pixabay.com/photo-2052868/

 

 사회를 투명하게 바꾸고 공정하게 진행되길 바라며 제정된 김영란법은 엉뚱하게도 스승의 날의 성격도 바꿔버렸다. 이제 스승의 날은 교사에 대해 감사(感謝)하는 날이 아닌 교사의 잘못을 살피고 부정을 감시하는 감사(監査)의 날이 되었다. 이에 많은 교사들이 스승의 날을 불편해하고 차라리 없애버렸으면 좋겠다는 국민 청원까지 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나의 성격을 너무 강조하면 되레 여러 부작용도 생기게 마련인데, 스승의 날을 앞두고 학생들이 장난스럽게 던지는 아픈 말들도 그 중의 하나다.

선생님, 카네이션 드릴까요? , 받으면 안 되죠?”

이런 비슷한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농담인양 교사에게 던지는 학생들이 얄미워 보일 수밖에 없건만, 그런 것도 티 낼 수 없는 처지인 것이 교사들의 상황이다.

 

 보다 황당한 건 스승의 날 시즌에 맞춰 내려오는 청렴 공문이다. 사실 그 청렴 공문을 내보내는 족속들이 대부분의 부정과 문제를 만들어 오지 않았던가. 교육계에서 촌지가 사라진 것이 언제인데, 아직까지도 그런 말들을 하는 건지. 세상이 변했다면서 교육계의 변화를 몰아붙이는 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교육계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교육계를 바라보는 시선은 바꾸지 않고 있다. 여전히 자신들의 학창 시절 겪었던 억울함과 분노로 교육계를 바라보고, 현재 자신의 상황만 고려해서 교육의 무가치함을 설파하고 다닌다.

사진출처 : https://pixabay.com/photo-3394536/

 

 선물을 받고 싶어 하는 말이 아니다. 다만 사회 전체적으로 누군가에게 감사하는 일이 너무 적어지고,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지나치게 강해진 것은 아닌가 묻고 싶다. ‘인간적이라는 표현 속에 인간은 어떤 존재일까. 분명 인간은 시대를 거듭하며 발전된 문명 속에 호화를 누리고 있건만 어째 갈수록 정글 속에 길을 잃은 사람들처럼 한껏 예민하고 자기 보호적으로 변해간다는 느낌을 주는가. 우리는 일상적으로 얼마나 많은 인간적 선의를 느끼며 사는가. 우리는 주변에 얼마나 감사하며 사는가.

 

 나는 꼭 교사가 스승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전에서 스승은 자기를 가르쳐 이끌어 주는 사람이다. 교사는 일정한 자격을 가지고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이다. 교사는 스승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모든 교사가 스승은 아닐 것이며, 어떤 교사가 누군가의 스승이 되더라도 다른 누군가의 스승은 아닐 수도 있다. 스승은 국가가 자격증으로 발부하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 자격을 표명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스승은 오직 가르침을 받은 사람, 즉 제자가 선택하는 것이다. 사전적으로 이끌어 주는 사람이라고는 하지만 그것이 물리적으로, 가시적으로 이끌어 주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제자 스스로 스승을 지도 삼아 자신의 길을 걸어갈 뿐이다. 길을 가던 순간에는 주변의 온갖 위협과 직전의 성취에 집중하느라 어떤 길인 지도 모른 채 걸어가지만 돌아보니 어떤 길에서는 누군가에게, 또는 어떤 글과 그림, 영화들에서 영감을 받아 용케 길을 잃지 않았음을 깨닫게 될 뿐이다. 스승은 인간 사회 전반에 존재한다.

 

 스승의 날은 그 모든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고 감사(感謝)하는 날이 되었으면 좋겠다. 모든 사람들이 오전에만 일하고, 오후에는 그런 사색과 만남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날이었으면 좋겠다. 나는 스승의 날에 반항하지마라는 만화책과 유시민 선생님과 연락도 안 되는 고등학교 친구와 아버지를 생각한다. 그 인연들이 없었다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아찔하다.

 

 거의 모든 교사는 스승을 꿈꾸지만 스스로 좋은 스승인지 판단하기는 쉽지 않고, 위험하기도 하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교사가 교육의 길을 제시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우리나라 교육의 방향은 정치권에서 정하지만 우리는 사실상 참정권이 거의 없다. 가장 소극적 형태의 참정권인 투표 빼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교육 정책에 대해 공감이 가는 후보를 본 적이 없지만 있다고 하더라도 후원하거나 응원할 수 없다. 아무리 개인적인 활동이라도 교사의 정치적 행동은 금지라는 것이 현재까지의 사회적 판단이다.

 

사진출처 : https://pixabay.com/photo-3355366/

 교사의 정치적 권리를 보장해달라는 말은 잠시 미루겠다.

 허나, 우리나라 특정직 공무원을 대표하는 군인, 경찰, 소방, 교육의 분야에서 그 분야에서 오래 일하고 풍부한 경험을 가진 이가 그 집단을 대표하지 않는 경우는 교육 밖에 없다. 교육은 중요하다고 하면서 항상 천대받는다. 교사는 참정권이 없고, 교육의 대표는 교사 출신이 아니다.

 

  정치인들은 아무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교사들의 의견을 들을 이유가 없다. 보다 직접적으로 자신의 선거에 도움이 되며, 그럴듯한 타이틀을 가진 사람들의 목소리를 더욱 중시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12년의 학교 경험이 있으니 대충 자신이 전문가라고 생각한다. 현장의 전문가는 말이 없고, 한 때 학생이었던 사람과 현재 학부모인 사람들이 대부분의 사안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 요리를 하고 있다.

 

 교사에 대한 영화, 웹툰, 소설, 뉴스, 무엇하나 좋은 얘기는 찾아보기가 힘들다. 교사들은 거의 무조건 잘못이라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교사들이 책임감과 의무감으로 희생하라는 요구만 늘어간다.

  행복한 교사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항상 찌들어 있다. 보다 먼 미래를 책임질 젊은 교사일수록 더 많이 힘들어하고 지쳐있다. 책임의 범위가 너무 넓어 아무리 사소한 판단도 스스로 할 수 없는 바보가 되어버렸다.

  스스로 판단할 수 없는 바보가 무엇을 책임지나.

 교사들도 잘하고 싶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싶다. 학생들을 책임지고 싶다. 그런데 그런 권한이 현재 교사들에게는 전혀 없다.

 

 스승의 날에서 시작하여 먼 길을 왔다.

 마지막으로 나의 주장은 스승의 날은 앞서 주장한 의미의 모든 스승에 대해 감사하는 날로 생각하고, 교육의 날을 따로 제정했으면 좋겠다.

 정신없이 바쁜 일과 속에서 교육적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하고 논의할 시간이 거의 없다. 적어도 그 날 하루, 교육의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현장의 소리를 들을 수 있으며, 상생을 위한 고민을 함께할 행사들이 진행되고, 선생님들이 참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시간표 바꾸고 일 잔뜩 미뤄두고 학교에서 눈치 보면서 참여해야하는 행사 말고, 그 시간 자체에 집중할 수 있는 그런 날이 하루쯤 있으면 좋겠다.

사진출처 : https://pixabay.com/photo-3407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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