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학&문화/나의 시

반문의 어려움 그 땐, 미처 손을 들지 못했다. 그 교실 누구도 손을 들지 않았기에 그 곳은 누구도 있는 듯 없었다. 그 곳엔 여전히 나서는 이가 없었다. 비겁한 겸손만이 미덕으로 떠돌았다. 가끔 누군가의 용기가 발견된다면 사람들은 근원적 죄책감을 해소하기위해 십자가에 메달곤 했다. 돌이켜보면 후회스러울 법도 할 사실들은, 미성숙의 증거로 남아 흔한 덕담으로 거래되었다. 오늘, 그 덕담에 질문을 던진다. 우후죽순 질문들이 쏟아진다. 더보기
뻘로 한참 삽질에, 채집에 망을 가득 채운 후에, 그럼에도 욕심이 남았을 때 이미 바다는 제 할 일을 마쳤더라 더보기
그 시간 큰 인과관계 없이 그 때가 떠오른다. 네가 술에 취해 밤늦게 찾아오던 날, 못이기는척 작은 방으로 들여놓던 날, 갖가지 원망 속에, 공상 속에 밤 새우던 날, 그 날 안아주던 차가운 공기, 구름, 희미한 별빛들 어느새 잠들어 버린 널, 조심스레 덮어두고 밤과 새벽 사이의 공기라도 날 뒤덮어 주길, 잠시 걸어본다. 지나치게 경사가 심한 언덕을 천천히 내려오자니 그것대로 힘들지만, 망상 속에 어지러운 머리로 이 언덕을 뛰어가자니 이 밤과, 이 공기와 너무 어울리지 않음에, 억지로 시간을 늦추려는 듯 다리에 힘을 준다. 그 때 얼마나 걸었을까, 천천히 늦춰놓은 나의 시간과는 별도로, 자동차, 가로등, 새벽을 걷는 사람들은 정직한 시간을 이행하고 알코올을 꿈과 함께 날려버린 너의 시간은 오히려 조금 빨랐나보다... 더보기
나를 위한 시 2011년, 봄날 나를 지우기 위한 게임을 하고있다. 이것은 큰 의미가 아닌 말 그대로의 일상이다. 무엇인가 터져나가는 잔인한 장면을 건조한 눈으로 감흥없이 바라본다. 수 시간이 흘러 내 몸의 여러 곳이 민원을 넣어도 별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집중한다. 2011년 여러 날이 가버렸지만 아직 현실이 되지 못한 채 서성거릴 뿐, 난 여전히 2000년대의 어딘가를 헤맨다. 며칠간의 무의미가 다시 의미가 되어 경종을 울릴 때 쯤, 책을 편다 분명 그 행위 자체는 모니터를 바라보는 것 만큼이나 현실과 동떨어진 동기였으나 책을 잠시 놓게 된 나는 다시 다른 사람이 되어 나를 바라본다. 넉넉지 못 한 마음이 닻이 되어 진행되지 않는 시간이 나아가고 있었음을 스스로 인정하고 풍요로워지자, 이 시를 쓰는 동기가.. 더보기
내 한 몸 추스르지 못한 채 내 앞가림조차 못한 채 누구를 가르치는 가 내 한 몸 건사하지 못한 데 누구의 손을 잡겠는 가 나, 아는 것 없이 세상을 보고 나, 들은 얘기로 세상을 말한다 내 살이 떨어지는 것도 모른 채 뱃속에 채워 넣기만 한다 내 마음 평온하지 못한데 누굴 안심시키나 내 머리가 이해하지 못한데 누굴 설득시키는 가 자비란 위에서 베푸는 것이요 용서란 일방적인 것이고 사랑이란 메아리로다 내 한 몸 추스르지 못한 채 무엇을 이루려 하는 가 더보기
나만한 오늘 나만한 오늘 한참의 무의미한 시간이 내게서 쓰여지고 나서 진정 의미가 없었는지 곰곰히 생각을 해본다. 조금 모자라는 시절에 흘러간 시간은 그 매몰찬 무의미에 의미가 생겼다. 너무나 왕성했던 시절에 빈틈을 채운 시간은 그 편안한 무의미에 의미가 주어졌다. 이제 목마른 시절을 맞이한 나에게 시간은 그 자체로 의미가 되었다. 내가 쓰는 시간이 동시에 나의 모습이다. 얼굴을 지우지 말자. 더보기
가까운 이별_연안부두 가까운 이별_연안부두 이제는 허름해진 삼거리를 지나, 우측 바다를 보며 걷는다. 버스는 목표까지 가지만 굳이 두 정거장 미리 내렸다. 미리 내림으로써 미래를 조금 늦춰본다. 그는 이미 20분 전 육지의 땅을 밟았다. 계속되는 벨소리가 그 사실을 주기적으로 일깨운다. 하지만, 천천히 천천히 보다 천천히 걷는다. 그에게 시간을 조금 더 주고 싶다. 그는 아직 모르니까, 나만 준비한 건 연인 사이에 약간 '반칙'인 듯 하다. 상념의 틈으로 걸음이 빨라졌다. 대학 졸업 후 취업 면접 기일이 다가오듯이.. 어떻게 말을 꺼내든 난 분명 서투르겠지 다시 바다를 본다. 자연히 시야에 담기는 연안부두, 가끔 배라도 결항되면 1시간 대기 동안 무던히도 걸었다. 멀리도 못 가고 삼거리까지, 또는 라이프쇼핑 앞까지 어쩌다 2.. 더보기
빈 바위 빈 바위 물범이 오지 않는다. 백상아리를 피해 유빙에 올라 새끼를 낳던 차가운 얼음 위에 갓 태어난 새끼를 끌어안던 물범이 오지 않는다. 개나리가 피어나고 벚꽃이 만개하고 철쭉이 웃고 있는 계절에 물범 부부가 보이지 않는다. 쌍안경을 아무리 돌려봐도 텅 빈 바위 위에는 어부 몇몇이 미역을 말린다. 랴오둥 반도로 스며든 폐수, 정력에 좋다고 작살을 쏘아대던 포수 온난화로 녹아버린 유(流)빙의 유실(遺失) 먼 나라 공주님의 결혼식 얘기만 같았다. 선대의 잃어버린 땅 같은 공허한 말인 줄 알았다. 꽃게는 바닥의 왕이 되고, 놀래미는 배짱이가 되었다. 심청각에는 쌍안경만 있고, 두무진에는 기암절벽만 있다. 유람선은 움직이지만 움직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물범바위에 갈매기도 해오라기도 앉지를 못한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