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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문화/나의 시

갈대의 순정 어차피 가실거라면 그냥 가세요 당신이 흘러가려는 곳으로 흘러가세요 가시는 길에 괜한 저를 흔들지는 마세요 바람을 잡아둘 방법을 찾아헤맸죠 멈춰버린 바람은 바람이 아님을 알아버렸죠 사랑하는 그대여, 그냥 날 가만히 내버려 두세요 그대는 흔적이 없는 바람이지만 그대의 향수는 머리 속에 그대로네요 그대 제발 날 흔들지 마요 더보기
고향 고 향 오랜만에 고향의 냄새를 맡는다. 벤치에 누워 하늘을 바라본다. 달과 희미한 별과 그 앞의 시커먼 나무의 실루엣이 정겹다. 시골이지만 아파트는 높고, 어머니는 바쁘시다. 그 와중에 풍족한 저녁상으로 내 위장은 비명을 지른다. 좋지 않은 이유로 내려온 고향이지만 고향은 여전히 향기가 좋다. 큰 이유 없이 떠나기가 힘이 든다. 반나절 후, 타고 있을 버스가 벌써 밉다. 달이여, 서울에서 봐도 반가워주렴. 바람이여, 서울에서 날 맞이해주렴. 짧은 귀향에 안타까운 밤이다. 더보기
나는 왕이며, 광대였지 나는 왕이며, 광대였지 생각해보면 손가락 하나가 없든 셋이 없든 온전치 못한건 마찬가진데 네가 없든 내가 없든 완전치 못하긴 매한가진데 사랑 따위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반쪽 짜리 인생보다 못할 텐가 더보기
혼자인 밤에 비가 내리면 걸어 들어가는 집의 황량한 길은 도통 나를 반기지 않는다. 잘 접히지 않는 우산은 내가 그 길을 망설이고 있다고 생각하나 보다. 아무것도 모르고 있기엔 너무나 큰 창이 비가 내리고 있음을 전해준다. 밝은 비라도 싫으련만 굳이 밤에 비가 내린다. 혼자인 밤에 비가 내리면 누구나 누군가 그리게 될까 지나가는 그림자가 아쉬운 밤이다. 더보기
낙서 낙서 새카만 잉크가 점쟁이가 되어 내 마음을 비춘다 이리저리.. 왔다갔다.. 어느새 내 앞에 심장이 놓여있다 어느새 내 앞에 머리가 놓여있다 그 녀석은 자유롭다. 꿈과 현실의 사선에서 날 비웃듯 헤엄친다. 비겁한 나는 거기에 내 혼을 담는다. 더보기
괜찮아요 괜찮아요.. 아프지 마요, 그대의 고통 내 정녕 모르겠지만 그대의 표정, 너무 서글프네요 익살스런 표정은 어디로 가고 걸죽한 입담은 보이지 않고 무심한 눈동자로 어디를 보나요 누구나 세상을 등지겠지만 너무 미리 돌리지마요 준비할 시간이 부족하니까 충분히 슬퍼하지도 못하잖아요 평생을 힘들다는 소리 없이 힘들었던 그대가 무에 이쁘다고 이쁘다고 살을 나눠주던 그대가 결국 제 살에 묻히네요 공장의 지독한 가스가 집 안의 끝없는 근심이 그대를 변형 시켰나 봐요 웃어요, 그대여. 기쁜 일 부족하지만 슬픈 일 넘쳐나지만 웃어요, 그리고 울어요 그대의 감정을 표현해주세요. - 돌아가신 이모님을 위한 시 더보기
어탁 새벽스러운 저녁 또는 아침 그 어느 날, 찬 공기가 필요하여 굳이 낚시를 한다 갈대 사이로 쉬이 공기가 흐르지 못하여 답답함이 감싸온다 어둑한 수면에 빠져들 듯, 낚싯대를 휘두른다 새벽, 물속이라고 풍족했으랴 풍덩 소리와 함께 붕어가 물어댄다 차갑게 식은 머리로 손맛을 음미한다 팔뚝만한 붕어가 눈앞에 있다. 펄떡이는 에너지는 없던 식욕을 부른다. 사진을 찍는다. 새벽, 어디 자랑할 곳이 없다. 사람이 없다. 흔히 보이던 낚시꾼들이 지레 부러워 모습을 감췄다. 어탁을 찍자. 편평한 곳이 필요해. 자갈을 치운다. 허겁지겁, 급해진다. 진흙을 고루 편다. 약간 홈을 만들고 약간 시들어가는 덩어리를 누인다. 고이 누인다. 불편하실까 붕뜬 공간에 흙도 채우고, 수평을 맞춘다. 어디서 흘러나왔나, 이 에너지. 덥다.. 더보기
수족관 투명한 벽이 있다. 아주 어릴 때부터 그 벽은 그를 가로막았다. 그는 가끔 그 사실을 잊어버린다. 아침에 눈을 뜨고, 저 멀리 태평양으로, '꽝' 하고 마친다. 그 때마다 조금씩 머리가 나빠지는 듯, 조금씩 더 자주 '꽝'하고 마친다. 어둠이 찾아오면 그의 집은 파란 형광불빛이 들어오며 무대가 된다. 그는 낮의 무력함은 잊어버린 채 그 공간, 유일한 빛의 세계에서 진정 기쁜 춤을 추곤 한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