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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문화/나의 시

그 시간

큰 인과관계 없이 그 때가 떠오른다.

네가 술에 취해 밤늦게 찾아오던 날, 못이기는척 작은 방으로 들여놓던 날,
갖가지 원망 속에, 공상 속에
밤 새우던 날, 그 날 안아주던
차가운 공기, 구름, 희미한 별빛들

어느새 잠들어 버린 널, 조심스레
덮어두고 밤과 새벽 사이의 공기라도
날 뒤덮어 주길, 잠시 걸어본다.
지나치게 경사가 심한 언덕을 천천히
내려오자니 그것대로 힘들지만, 망상 속에 어지러운 머리로 이 언덕을
뛰어가자니 이 밤과, 이 공기와 너무
어울리지 않음에, 억지로 시간을
늦추려는 듯 다리에 힘을 준다.

그 때 얼마나 걸었을까,
천천히 늦춰놓은 나의 시간과는
별도로,
자동차, 가로등, 새벽을 걷는
사람들은 정직한 시간을 이행하고
알코올을 꿈과 함께 날려버린
너의 시간은 오히려 조금 빨랐나보다.

그 시간, 눈을 뜬 너를 맞아준
하얀 벽들과 작은 책상, 옷가지들
어디에도 나는 없었고

그 시간, 망상 속에 헤매이며
정처없던 나의 갈등, 그 끝에 내린
결정을 맞이할 너도 없었다.

그 당시, 난 항상 그렇게 조금 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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