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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문화/나의 시

그거 생각보다 멀다 그거 생각보다 멀다 그거 생각보다 멀다. 옥상에 올라 도화동을 거쳐 주안 쪽으로 눈을 돌리다 그 너머 흐릿한 구월동이 졸업해 버린 너희들 같아 괜시리 쓰리다. 빈 교실 잔상처럼 지나가는 떠드는 모습 허공을 지나가는 손이 아프다. 함께한 기쁨이 남은 이별한 자리 아래, 지그시 올라오는 슬픈 연기에 눈이 맵다. 더보기
개가 짖는 것이 싫다 개가 짖는 것이 싫다 어릴 적 골목에 들어서면 저만치 우리 집이 보이는데 원수 같은 개새끼가 내 앞에서 짖어댔다. 가고 싶은 발걸음은 그 한없이 독한 외침과 드러낸 이빨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붙박이가 되었다. 한참을 마주하다 지쳐갈 때 쯤 지나가는 큰 어른의 무심한 발길질에 나의 길도 열렸다. 아파트에 살게 되자 개들은 사라졌다. 나의 귀가는 한층 더 안정되었지만 가끔 아니, 자주 소리를 높이시는 아버지의 모습에 그때 그 개들이 겹쳐보이곤 했다. 왜그리 화를 내실까, 주변은 잠잠한데.. 홀로 커진 목소리에 부끄러움과 원망이 샘솟았다. 그냥 좀 양보하시지, 그냥 좀 참으시지. 언제부터인가 주변이 조용하다. 누구도 아무도 없듯이 살아간다. 퍽퍽하고 막막하고 때로 화나지만 나또한 입이 없는듯 말이 없다... 더보기
1+1 1+1 혼자 태어나 부모 밑에서 자랐다 친구에게 간이랑 쓸개를 빼다 바치던 시절, 부모는 심장마저 나에게 토해내었다 사랑에 미쳐 내 사랑만 바라보던 나, 부모는 내 사랑마저 끌어안았다 어느덧 나의 위치를 안다 나는 열매에서 나무가 된다 양분이 떨어질 때 쯤, 하나가 두 글자임을 안다 더보기
1999년 1999년 아직 성장하지 못한 채 어른이 되어버린 그들의 무너짐이 세상에 흘러간다 흐를 수 없을 것 같던 그들의 움직임이 도미노처럼 또 누군갈 무너뜨리고 또 무너뜨리고 또 무너뜨린다 한 때 문득 피어났던 행복은, 가만히 지나가는 풍경에 자신의 계절을 내줘버리고 말 못할 흐느낌만 집 구석구석 남아, 적막 속에 들썩인다 20세기가 멀어지며 그 하나하나 소중한 빛들도 흐려지고 아직 성장하지 못한 아기들의 조숙함만 지나치게 늘어간다. 더보기
매 순간 최선은 어디서 찾는가? 매 순간 최선은 어디서 찾는가? 나는 최선을 다 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나의 잠재력은 영원히 잠재되리라 허나 그것이 위대한 마우나로아처럼 넘쳐 나온다 할 지 언정, 내가 그것을 어찌 알겠는가 만약 나에게 그러한 것이 없다손 치더라도 내가 그것을 어찌 알겠는가 난 최선을 다하지는 못하는 인간이라 잠재된 재능의 일부만 조금씩 뽑아쓰리라 그리고 이 세상과 작별할 때 아쉬움 한가득 남겨놓고, 수명이 역사를 방해하는 구나, 허세를 뿌리며 사랑하는 이들과 헤어지리라 난 결코 만족하지는 못하는 삶을 살 것이지만 결코 삶의 목적을 잃어버리지는 않으리라 적어도 허망함에 몸을 맡기지는 않으리라 더보기
이른 비 이른 비 오랜만에 우산이 펼쳐진다. 자글자글한 구김이 흘러간 세월의 주름살 같다. 바빠진 장사꾼들의 얼굴은 젊음을 되찾는다. 언제쯤 3000원짜리 우산을 사는 마음이 가벼워질까 자연스레 많아진 지하철의 거렁뱅이들 그들의 눈빛과 목소리에 나는 화답하지 못한다. 오래 전 지구가 탄생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 수 천년 동안 내렸던 그 뜨거운 비를 생각한다. 식어버린 그 뜨거움을 바라보며 내 가슴의 열기를 느껴본다. 바쁘게 머리를 털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다시 한 번 거렁뱅이들의 비어있는 소쿠리를 바라본다. 호주머니 속 텅 빈 지갑을 매만져본다. 아직 얼어붙은 땅에 조금 이른 비가 내린다. 오늘은 눈이 아닌 비가 내린다. 벌써 봄이 오려나.. 달력은 찢겨질 날만 기다리는 데 성급한 하늘이 먼저 봄소.. 더보기
색바램 색바램 안개 낀 도시를 멀찍이 바라보며 고속도로를 지나간다 잠시 포함되었다 빠져 나간다 누가 묻는다 그 도시를 아냐고 난 모른다고 대답한다 무심히 물어본 그 도시의 이름이 안개 너머 희미한 조명을 아름답게 채색 한다 한번쯤 가보리라 던 작은 의지가 수십 번 수백 번 그곳에 있게 한다 시간은 익숙함과 능숙함을 제공한다 누가 묻는다 난 아주 잘 안다고 대답한다 안개는 사라지고 집, 학교, 단골집, 도로까지 명확하지 않은 것이 없다 명확하지 않은 것이 없으니 뿌연 조명의 아름다움도 없다 고속도로를 지나간다. 안개 낀 도시를 만나기 위해 둘러보지만 모두 너처럼 보여 의미가 없다. 더보기
사랑가 사랑가 전복을 딴다. 포도를 따고, 다래도 딴다. 상추도 따고 고추도 딴다. 무엇을 그리 먹었는지 토실도 하다. 감자를 캔다. 고구마도 캔다. 열무도 캐고 조개도 캔다. 어찌 그리 아끼는지 주변이 어지럽다. 바다에 빠져보고 산에 올라보고 들에도 나가보고 하늘도 올려본다. 사랑, 사랑, 사랑이로구나. 굴러보고 뛰어보고 누워도 본다. 따고 캐고 주워도 본다. 사랑, 사랑, 사랑이 분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