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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문화/나의 시

기다림 속에는 당신도 늘 함께입니다 점심 메뉴와 소소한 농담으로 벌써 당신은 웃고 있습니다 난 늘 일찍 출발해서 그 즐거움을 누립니다 당신도 내 마음을 아는지 늘 늦게 도착합니다 더보기
선 긋기 선을 그어버렸다 넘어오지도 가지도 못하게 어떤 접촉도 일어나지 않도록 선을 지켜봐야 했다 넘어오지도 가지도 않도록 어떤 움직임이 생겨나지 않도록 허나 시선은 허공을 넘나들고 표정은 여과 없이 드러났다 녹색이 야금야금 선을 지웠다 더보기
송년회 올해의 나를 다시 잊는다 숱한 계획과 다짐 속에 무기력하게 패배해갔던 나를 보내버린다, 어디로 알코올과 검은 연기로 지우고 덮었다 고생하셨다는 뻔한 인사말 속에 숨어있어 본다 그러곤 한쪽 눈을 치켜뜨고 다음 해를 노려보았다 아직 뜨지않은 뜨거움으로 겨울의 손을 녹여 본다 더보기
숨바꼭질 더 이상 사무실에 들를 필요가 없었다 그제야 그는 옷장 구석에 처박혀있던 낡은 청바지를 꺼냈다 약간 커져버린 청바지에 벨트를 단단히 매고 집을 나선다 한창 늑장을 부려 나온 시간이건만 아직 공원은 잠들어 있었다 꽃들도 아직은 봉우리를 맺은 채 시기를 기다렸다 비둘기들도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닐 뿐 모이를 쪼지 않았다 등나무는 메말라 있었고 노인 몇몇이 장기를 막 시작한다 공원 입구엔 냉커피와 생수, 오징어 등을 파는 아주머니가 장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는 그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이곳에서 무엇인가를 끝내려는 이는 나뿐인가 해가 솟으며 전한 봄기운이 공원을 덥히기 전까지 그는 그 상태 그대로 박혀있었다 맺힌 땀이 턱을 간지럽히고 나서야 그는 걸음을 옮긴다 나는 이미 다 끝나버린 상태인건가 온화해진 기.. 더보기
밤엔 창밖이 보이지 않는다 그 테이블에 처음부터 혼자 있던 것은 아니었다.하나 둘, 제자리를 찾아갔고 나의 자리가 그 곳 말고는따로 없었기에 어찌 보면 자연스런 결과였다굳이 둘러보면 더욱 내 자리가 초라해질까담담한 척 정면의 빈자리만 응시한다어느새 어두워진 창밖은 보이지 않았고 덩그러니 앉아있는 내 모습만 창에 남아있었다즐거운 소란의 늪에 빠져 고요해져 버렸다.말을 하고 싶지 않지만 말이 필요한 상태였다침묵 속에 공기가 빠져 숨이 막혀왔다울그락푸르락 무언가 들끓어 올라 손발이 통제되지 않는다그 순간, 뜨거운 기운이 테이블 전체를 감싸고 솟아올랐다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휴지들과 잔 속에 버려진 소주들이 날아올랐다 무게감이 사라지고 발밑으로 숙소가 보인다창속에는 여전히 낯선 즐거움이 넘쳐흘렀지만더 이상 내 발목을 휘감지는 못했다별빛을 .. 더보기
낯과 방 고개를 넘자 산 속에 둘러싸인 마을이 보였다. 끝과 끝이 한 눈에 들어오는 작은 마을이다. 관광으로도 온 적 없던 외진 곳. 어렵사리 차를 세워두고 짐을 풀지 않은 채 걸었다 금방 둘러볼 수 있으리라 세탁소와 마트, 혼자 먹을 식당 정도만 봐두자 그런 마음으로 걸음을 옮겼다 지나가는 아이들이 무턱대고 인사를 한다 너희는 왜 나한테 인사를 하니 / 어른이잖아요, 누구세요 아, 이번에 새로 이사왔다 / 선생님이세요 그걸 어찌 알았니 / 딱 보면 알아요 유리창에 비친 나를 바라봤다 왠지 알 것도 같다 아이들은 우르르 가버렸다, 물어볼 새도 없이 나도 그렇게 교실을 나왔던가 세탁소는 없었고, 조그만 슈퍼는 문을 닫았다 몇몇 식당 앞에서 어슬렁 거렸지만 들어가지는 않았다, 곧 알게 되겠지 관사에는 세탁기가 없었다.. 더보기
침묵 어떤 소리도 없는 곳보다 하나의 소리만 존재할 때 보다 고요했다 보다 조심스러웠다 그리고 곧 눈을 감아버렸다 이건 이거고 저건 저거야 중국에서는 아닌데요 숨을 삼켜 버렸다 공기는 계속 한 쪽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더보기
돌개구멍 뒷사람에게 떠밀려 앞으로 나아간다 방향을 정할 수가 없어 빈틈을 계속 메우길 반복했다 기둥에 가로막힌 인파에 가로막히기 전까지는 그래도 방향성은 있었다 갑작스런 벽에 부딪히고 또 밀쳐지며 결국 돌기 시작했고, 북쪽은 남쪽, 동쪽은 서쪽과 같아졌다. 기둥 주위로 사람들은 강강술래를 시작한 것이다 옆 사람을 잡고 또 잡으며 충돌을 회전으로 막아냈다 발과 발이 끌리고 밟히며 먼지가 일었지만 사람들은 그 어울림을 즐기고 있었다 바다로 향하던 마음을 중력과 함께 떠나버리고 소용돌이와 함께 조금씩 가라앉았다 분지 중앙에 노인이 주저앉는다 그 주위로 사람들이 돌고 돌며 멀어져 간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