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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문화/나의 시

속 없는 밤

식탁 위에 밤이 한 가득이다.

마을 지천에 밤나무가 가득했다.

며칠이 지났지만 식탁의 밤은 줄지 않았다.

주로 동생이 밤을 주워왔고, 아이는 그 밤을 싫어했다.

가끔 식탁 위로 손이 갔지만 밤을 먹지는 않았다.

밤길에 집에 갈 때면 발밑에 밤이 곧잘 채였다.

밤을 새고, 세며, 조금씩 곪아간다.

읍내가 멀어 시간 감각이 없어지곤 했다.

해지면 밤이 오고, 밤이 오면 엄마가 왔다.

결국 밤은 익어버렸고 아이는 먹을 수 없었다.

밤송이를 가를 때는 늘 손을 조심해야 한다.

동생은 아이의 손에 난 피를 보며 가르치려 들었다.

잎사귀에 둘러싸여 구멍이 보이지 않았다. 들어갈 수가 없다.

아이는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아 불안해져 버린다.

밤은 여전했고, 그 날은 밤이 줄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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