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문화265 아빠 아빠 아들이 부른다 아빠, 아빠 아빠 소리가 좋아서 괜히 딴청을 피웠다 아빠, 아빠, 아빠 아들의 목소리에 다급함이 스며들고 그제야 고개를 돌려 묻는다 응, 무슨 일이야? 아들은 다시 장난감 자동차를 운전했다 왜 불렀어, 볼에 뽀뽀하며 물어보지만 아들은 내 얼굴을 손으로 밀어내며 운전에 집중하고 있었다 나는 아빠를 굳이 보려고 하지 않았다 옆에 있으면 되었다 아빠가 나를 보고 있으면 되었다 등 뒤에서 내 손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길이 울퉁불퉁하지는 않은지 그런 것들을 유심히 지켜보면 되었다 나는 아빠가 심심하지 않게 그저 열심히 뛰어놀면 되는 것이다 운전 중이었다 아빠가 여전히 뒤에서 말했다 조심히 운전해라 나는 돌아보지도 않은 채 알아서 할게요 너무 무신경한 대답에 스스로 놀라 슬쩍 거울을 봤다 아빠는.. 2021. 6. 29. 쿵쿵 쿵쿵 밤중이었다 도로는 잘 정비되어 있었다 헤드라이트가 앞을 비추었고 자동차는 그 방향으로 나아갔다 쿵 급히 날아오르던 기러기가 부딪쳤다 핏자국을 남기기도 전에 자동차는 나아갔다 밝음 사이로 몇몇의 그림자가 지나간다 쿵 쿵 작은 것들은 소리도 남기지 못했다 빛은 길이었다 자동차는 길을 따라 나아간다 쿵쿵 쿵쿵 음악 소리가 희미하게 남겨졌다 사방이 환해지고 빛의 길이 사라질 때까지 자동차는 앞을 향해 나아갔다 2021. 6. 18. 모서리에 빠지다 늘 모서리에 서 있었다. 위태로운 날카로움 위에 서서 벗어나지 않은 채 줄타기를 이어갔다 그것은 분명 위험한 일이었다 종이에 베이듯 인식하지 못한 틈으로 상처들이 쌓였다 빨간 선이 겹쳐지며 강이 되고, 호수가 되고, 바다가 되었다 풍덩 밖에 서 있으며 느낀 안도감은 사라지고 온통 검은 면 위에 떨어진 잉크 한 방울이 되었다 색은 어둠 속에 묻히고, 검은 공간 속에 검은 바닥은 깊이를 알 수 없었다 목소리를 내보았지만 모서리만 잠시 진동하다 멈춘다 검은색과 검은색 사이에는 모서리가 없는 것인가 그 어느 경계를 찾고 싶었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 바다 위를 걷기로 한다 조용히 내려다보며 천천히 걸어간다 온통 까만 공간에서도 얼룩은 있었다 얼룩덜룩한 무늬들을 교대로 밟아갔다 두 손에 검은색을 담아본다 어두운.. 2021. 4. 28. 하기 전에 싫다 아침이다눈은 떴지만, 여전히 뒤척인다일어나기가 싫다오늘 하루 펼쳐질 고단한 삶이오늘 하루의 시작과 함께 마중 나온 것 같다그 여정을 온전히 감내하지 못할까두려워일어나지도 않은 채 일어나기를 싫어한다 어떤 일들은 시작도 하기 전에실패가 그려진다그럴 때면 그 일들이 두려워져서시작조차 못 하곤했다공부가 그랬고, 사랑이 그랬다 난 결과를 몰랐지만무수히 많은 실패를 목격했고수없이 조언을 들으며그들의 두려움을 행동 지침으로 삼았다난 실패가 싫었고, 실패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무서웠고, 실패한 후실패자가 된다는 것도 싫었다성공보다는 실패하지 않는 삶,실패하지 않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공부를 안 할 수는 없었지만전력을 다하지는 않았다고백은 했지만, 상처는 적었다나는 성공적으로 방어했고,그곳에 실패는 없었다 내가 오늘 .. 2021. 4. 28. 호랑이의 추억 노력보단 재능, 재능보단 운의 문제이다 내가 사람이 된다는 것은 직설적으로 내 입맛의 변덕과 같은 그런 문제이다 쑥은 어릴 때 할머니가 곧잘 따서 주셨다 소화제라고, 그때도 나는 먹는 척만 하며 입안에 한참 머금다가 나중에 뱉어냈다 할머니는 등을 토닥여주시며 그래도 먹어봐, 하셨다 가끔 배가 고파 정신없이 먹다 보면 조금은 쑥이든 마늘이든 입안으로 들어갔겠지 그래도 그건 역시 운의 문제였다 대체로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나는 컸고, 그들은 작았다 그들은 무방비였고, 나는 무기가 있었다 나는 먹었고, 그들은 먹혔다 결국 나는 사람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사람을 만나고서야 내 운이 다했음을 알아버렸다 2021. 3. 25. 두 개의 방 서로 이해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하지만, 상황이.. 세상은 복잡하고 사람은 다양하다고, 미처 생각지 못한, 오해가, 감정적으로, 텅 빈 방이 쪼그라든다 반대편에선 가득 찬 방이 점점 커져왔다 방이 겹쳐지며, 빈 방의 경계가 흐려졌다 오해가 풀렸다고 말했다 정말 이해한다고 말했다 빈 방의 주인은 사지를 움츠리며 자물쇠를 채웠다 2021. 3. 25. 이전 1 ··· 4 5 6 7 8 9 10 ··· 45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