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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문화265

미소 파도가 밀려온다 첫번째 파도는 첫번째 바람이 만들고 두번째 파도는 두번째 바람이 만들었다 세번째 파도는 정어리떼가 만들고 네번째 파도는 오징어배가 만들었다 다섯번째는 요란하게 몸을 뒤틀었다 첫번째 파도가 열 개의 돌맹이를 밀어낸다 두번째 파도는 백 개의 모래를 걷어냈다 세번째 파도는 조개의 입으로 들어가고 네번째 파도는 꽃게의 배에서 나온다 다섯번째는 살 속의 진주 열 개를 만났다 떠밀려온 파도는 울다가 결국 웃어버렸다 2021. 10. 8.
[책] 임계장 이야기 "나는 퇴직 후 얻은 일터에서 '임계장'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는 '임시 계약직 노인장'이라는 말의 준말이다. 임계장은 '고다자'라 불리기도 한다. 고르기도 쉽고, 다루기도 쉽고, 자르기도 쉽다고 해서 붙은 말이다. 고용주들에게 이 고다자 임계장들은 시급만 계산해 주면 다른 아무것도 신경 쓸 필요가 없는 매력적인 노동력이다." - 임계장 이야기 p.7, 조정진 나는 책을 읽을 때 맨 처음에 나오는 작가의 말을 열심히 읽는 편이다. 독자들에게 정성스럽게 써내려 간 작가의 말을 보고 나면 책을 읽고 싶은 욕구가 조금 더 증가하고, 책의 전반적인 목적에 대해서도 이해하기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임계장 이야기'의 경우는 작가의 말을 보고 조금 망설여졌다. 이 책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너무 명확했고,.. 2021. 9. 30.
입수 하루쯤 떠나고 싶다 이틀은 부담스럽고, 오후 반나절에서 다음날 새벽 정도까지가 좋겠다 떠날 때 돌아올 길을 생각하지 않고 돌아올 때도 다음을 기약하지 않는 가벼운, 최대한 무감각한 하루가 좋겠다 환청처럼 들리는 다급한 소리, 울음 소리, 먼 한숨 소리 모두 소라 껍질 속에 가둬버리고 메아리가 메아리가 되는 현실 속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다 굽은 허리와 처진 어깨도 쉬어라, 일어날 필요없다 그냥 자연스럽게 중력에 기대자 누워서 뒹굴거리다 보면 목적지는 온다 그때 잠시 기지개를 펴며 일어나보자 조용하고 어중간한 바다 속에서 그냥 하루만 머물다 돌아가자 2021. 9. 23.
봉선화 2021. 7. 15.
동행 아빠가 너무 빨랐다 성큼성큼 무심한 발걸음을 쫒아가느라 내 발은 쉴 새 없이 구르고 뒤뚱거렸다 ‘아빠’ 조금만 천천히 가라는 의미이다 ‘어서와’ 나보고 더 빨리 오란다 다시 폴짝폴짝 날듯이 뛰어보지만 이내 다리가 풀려 풀썩 주저앉았다 서러운 마음에 엉엉 울고 있는데 아빠는 ‘뛰다보면 넘어지기도 하는 거야’ 하며 염장을 질렀다 나는 재촉하는 아빠의 팔을 뿌리치며 얼마 전까지 먹던 젖이 다시 튀어나올 만큼 더 크고 우렁차게 최대한 울음을 쥐어짰다 아빠는 결국 나를 번쩍 안아들었다 아빠, 빨리 가면 더 힘들 수도 있는 거야 2021. 7. 9.
술 취한 새벽, 마누라는 죽어났다 새벽인 것 같다 아직 덜 깬 몸을 억지로 비틀며 타들어 가는 목구멍을 적시기 위해 일어난다 간밤에 몇 차까지 갔더라,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취할 때까지 미루고 미루다 결국 얘기했던가 내일 물어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 내가 성질을 내면서 말했던가 온갖 생각이 물 한잔에 섞여 뇌로 흘러들었다 다시 자야지, 머리를 흔들며 소파로 간다 마누라가 나 죽지 말라고 이불을 던져줬구나 소파 팔걸이에 머리를 대고 구부정하게 누웠다 잠이 들락 말락, 문이 열렸다-닫혔다 어제 술자리에서 본 얼굴들이 떠올랐다 사라지는 와중에 끼익- 조심스러운 소리와 함께 잠이 멀어진다 마누라는 살금살금 나와 젖병을 타고 다시 살금살금 애가 깼나보다, 힘들겠네 걱정은 잠시, 다시 얼굴들이 떠다니고 문이 열렸다-닫혔다 하는데 끼익- 문이.. 2021. 6.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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