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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문화/나의 시

술 취한 새벽, 마누라는 죽어났다

새벽인 것 같다

아직 덜 깬 몸을 억지로 비틀며

타들어 가는 목구멍을 적시기 위해 일어난다

간밤에 몇 차까지 갔더라,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취할 때까지 미루고 미루다 결국 얘기했던가

내일 물어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

내가 성질을 내면서 말했던가

온갖 생각이 물 한잔에 섞여 뇌로 흘러들었다

 

다시 자야지, 머리를 흔들며 소파로 간다

마누라가 나 죽지 말라고 이불을 던져줬구나

소파 팔걸이에 머리를 대고 구부정하게 누웠다

잠이 들락 말락, 문이 열렸다-닫혔다

어제 술자리에서 본 얼굴들이 떠올랐다 사라지는

와중에

끼익- 조심스러운 소리와 함께 잠이 멀어진다

마누라는 살금살금 나와 젖병을 타고 다시 살금살금

애가 깼나보다, 힘들겠네

걱정은 잠시, 다시 얼굴들이 떠다니고

문이 열렸다-닫혔다 하는데

끼익- 문이 열리며 마누라가 다시 나온다

- 젖병을 내놨구나

치직- 아기 띠를 매는 건가

- 내 이불이 움직이네

일어날까 말까 고민하는 사이

다시

끼익- 조용히 문이 닫히고

이내 의식이 닫혔다-열렸다

간간이 들려오는 응애 소리

아니 간간이 열리는 귓속 문

술과 출근을 핑계로

이기적인 조금만의 반복

 

때르릉- 알람과 함께 아침은 왔다

밥이라도 차려야지, 슬며시 일어나는데

마누라가 해장국을 먹으라네

밥 한술 푸고, 밥 먹는 애 얼굴 한 번 보고

오늘도 잘해야지, 잘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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