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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문화/책과 영화

[책] 임계장 이야기

 

"나는 퇴직 후 얻은 일터에서 '임계장'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는 '임시 계약직 노인장'이라는 말의 준말이다. 임계장은 '고다자'라 불리기도 한다. 고르기도 쉽고, 다루기도 쉽고, 자르기도 쉽다고 해서 붙은 말이다. 고용주들에게 이 고다자 임계장들은 시급만 계산해 주면 다른 아무것도 신경 쓸 필요가 없는 매력적인 노동력이다."  - 임계장 이야기 p.7, 조정진

 

 나는 책을 읽을 때 맨 처음에 나오는 작가의 말을 열심히 읽는 편이다. 독자들에게 정성스럽게 써내려 간 작가의 말을 보고 나면 책을 읽고 싶은 욕구가 조금 더 증가하고, 책의 전반적인 목적에 대해서도 이해하기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임계장 이야기'의 경우는 작가의 말을 보고 조금 망설여졌다. 이 책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너무 명확했고, 그 이야기를 본 후 나의 기분이 좋지 않을 것 같았다. 사람이 싫어질 것만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임계장 이야기는 딱 그런 이야기다. 더군다나 픽션이 아니라 자신의 실제 삶에 대한 기록이었다. '르포르타주'에 가까운 글인 것이다. 임계장이 된 저자는 버스 터미널의 배차 계장, 아파트 경비원, 터미널고속의 보안 요원으로  근무했으며, 그 동안 겪은 짧은 에피소드들로 책은 가득차있다. 밝은 에피소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거의 99% 우울한 에피소드들이다. 버스에 짐을 싣다가 부상을 당했지만 병가와 산재는 커녕 바로 회사로부터 해고를 통지받았고, 제대로 눕지도 못하는 경비실에서 추위와 더위를 견디고,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휴게 시간에 지하에서 도시락을 먹으며 온갖 잡무에 시달렸지만, 높으신 양반의 비위를 맞추지 못해 징계위원회에 회부되는 등 읽다보면 정말 화가 나다못해 인간이 한 없이 싫어지는 이야기들로 가득차 있다. 누군가는 '현실은 더 심하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도 같다. 

 

 모르겠다. 분명 누군가는 이 책을 읽고 힘드신 상황 속에서 고군분투 하시는 어르신들을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결심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현실로부터 도망가고 싶어졌다. 더이상 사람이 싫어지기 전에 잠시 벗어나고 싶은 욕구를 느꼈다. 아마도 이런 일들이 현재 너무 많이 벌어져서 그런 것 같다. 너무나 슬픈 이야기들이 내 주위를 감싸고 있다고 느낀다. 구멍이 안 보이면 앞으로 나갈 수가 없지 않을까. 모르겠다. 그래도 노력하는 것 이외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언젠가는 세상이 훨씬 더 좋아져서 사람들이 행복에 충만한 글들을 썼으면 좋겠다. 그런 글들이 주위에 넘쳐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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