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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문화/나의 시

취객(醉客)

왜 그랬냐, 물으면

늘 취해서라고 답했다

그런 종류의 변명은

다음이 없어 편안함을 느꼈다

 

그날도 취해있었다

영수증은 바로 찢어버리고

무엇을 묻든 그러려니 했다

내일이 없는 것처럼

그날을 불살랐다

 

분명 불타고 있었다

속부터 겉까지 검게 변해가며

연료가 모자랄까 급히

알코올을 들이 부었다

 

옷을 잡아끄는 것들이

버거워 벗어버리고

부끄러움도 지워버리고

 

결국 아침은 찾아왔고

눈 속에 들어온 어색함만큼

커다란 짐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흩어져 희미해진 자아를

파고드는 물음 속에

해줄 말은 역시 취해서였다

혹여 알코올이 날아갈까

입을 틀어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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