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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문화/나의 시

개구멍

고양이가 힘껏 뛰었지만

새는 금새 날아올라

제 집에 틀어박힌다

나뭇가지 끝, 아슬하게 메달린

아지트로 고양이의 눈이 향한다

잠시 으르렁 거렸지만

이내 포기한다

 

엊저녁, 집에 가는 길

미친개가 쫓아왔다

동네에서 소문으로 듣던

그 개가 분명했다

물리면 미치거나 죽는다던

 

뛰었다, 힘껏

학교 체력장 때도 어슬렁 대던

내가 어디서 그런 힘이 났을까

허나 곧 막혔고, 주위는 어두웠다

가방을 손에 쥐고 좌우로 흔들었다

투우사 비슷한 심경으로 개를 직시했다

덤벼라, 덤벼, 난 안 죽는다

누구에게 말하는 건지 모를 소리를

뱉어내던 순간, 개는 크게 짖으며

달렸다, 각오와 달리 난 뒤로

넘어져 버렸고, 미친개는 건물 구석의

틈으로 들어가 버렸다.

 

돌아오는 내나 뒤통수가 근질거려

몇 번이나 돌아보곤 했다

미친개의 몸에 붙은 붉은 빛이

떠오른다. 나도 그 붉은 일부가

될 것이라 여겼었다

 

그 개는 소문의 개가 아니었나봐

진짜를 만날 수도 있을까

소름이 돋았다

 

언제든 도망칠 구멍을 찾으며

집에 가는 길은 오히려 평소보다

오래 나를 위험에 노출시켰다

저녁 식사 후 열린 내 방문을 보며

그 검은 틈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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