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알랭 드 보통)'
책을 다 읽고, 제목을 왜 저렇게 달았을까 한참 고민했다.
작품 뒤편에 나온 원작 제목은 '에세이 인 러브'였던가, 아무튼 저런 제목과는 좀 무관했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
나는 너를 왜 사랑하는가
세 문장의 차이가 뭘까? 왜를 아무데나 붙여도 말이 되는 한글의 우수함을 말하고자 하는 건 아니다. 나는 왜 제목을 저렇게 만들었을까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은 거다.
세 번째부터 시작해보자.
'나는 너를 왜 사랑하는가'라는 질문은 사랑의 이유에 초점이 있다. 즉 내가 너를 사랑하는 건 맞는데, 그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이다. 사랑의 이유는 없다지만 한편으로는 서로 끊임없이 이유를 묻고 찾기 마련이며, 그 과정이 사랑을 공고히 하기도 한다.
그럼 두 번째,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라는 문장의 핵심은 무엇일까? 내 생각에 이 문장의 핵심은 '너'이다. 세상의 많은 사람 중에 다른 누구도 아닌 너를 왜 사랑하고 있는지 자신에게 묻는 것이다. 이건 사랑을 하고 있다는 전제가 깔린 세 번째 문장보다는 사랑의 깊이가 조금 덜한 상태에서 던지는 질문같다. 왜 너를 사랑하는가는 달리 말하면 다른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데 너를 사랑하는게 의외라는 느낌을 주니까. 물론 그 생각이 깊어지면 세 번째 단계로 넘어가겠지만 이 질문에 반드시 '너'여야 한다는 결론이 도출되지 않는다면 다른 대안을 찾아 떠나버릴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 책의 제목인 첫 번째 문장,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의 핵심은 어디에 있을까. 눈치챘겠지만 이 문장의 핵심은 '나'에게 있다. 즉, 나는 사랑할 수밖에 없는 존재인가, 라는 질문의 다른 형태에 가깝다. 이 문장에서 '너'는 특정한 너가 아니며, 사랑도 대상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나라는 사람이 삶을 살아가며 결국 누군가는 사랑하게 되어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때 나에게 던지는 질문인 것이다. 사랑에 숱한 상처를 받아놓고 왜 나는 또다시 그런 힘든 길을 가려고 하는가, 라며 스스로에게 묻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의 핵심 주제는 제목에 모두 나와있다고 생각한다. 정말 간략히 작품을 요약하면 주인공이 클로이라는 여자에게 갑작스레 빠져들었고, 열정적으로 사랑을 나눴지만 결국엔 비참하게 헤어졌고 자살까지 시도했다. 그럼에도 주인공은 상처를 잊고 다시 사랑을 시작하며 작품이 끝나는데, 그때 주인공이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이 아마도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이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해본다.
그러니까 우리는 누군가 결국 사랑하게 되어있으니 현재의 사랑이 조금 좌절되었다고 너무 슬퍼하거나 무너져버리지는 말자는 교훈이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니었을까?
나는 그래도 현재의 사랑에 충실해야한다고 생각하지만 스스로 너무 비참해지지 않는 사랑을 모든 사람이 누렸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그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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