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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문화/나의 시

숨바꼭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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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사무실에 들를 필요가 없었다

그제야 그는 옷장 구석에 처박혀있던 낡은 청바지를 꺼냈다

약간 커져버린 청바지에 벨트를 단단히 매고 집을 나선다

한창 늑장을 부려 나온 시간이건만 아직 공원은 잠들어 있었다

꽃들도 아직은 봉우리를 맺은 채 시기를 기다렸다

비둘기들도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닐 뿐 모이를 쪼지 않았다

등나무는 메말라 있었고 노인 몇몇이 장기를 막 시작한다

공원 입구엔 냉커피와 생수, 오징어 등을 파는 아주머니가

장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는 그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이곳에서 무엇인가를 끝내려는 이는 나뿐인가


해가 솟으며 전한 봄기운이 공원을 덥히기 전까지

그는 그 상태 그대로 박혀있었다

맺힌 땀이 턱을 간지럽히고 나서야 그는 걸음을 옮긴다


나는 이미 다 끝나버린 상태인건가


온화해진 기운을 타고 공원에도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오징어 타는 냄새가 바람을 타고 사람들을 자극한다

아기들은 부모의 양손을 잡고 그네를 탔다

노인 한 명이 지나가던 아이에게 먹을 것을 내밀었다

인근 학교에서 나온 학생들이 몇몇 도구들을 펼쳐놓고 실험을 했다

세숫대야에 담긴 물이 춤을 추듯 튀어 오르고 팽이가 날아다녔으며

곰 인형이 외줄타기를 하는 모습을 가족들이 구경했다

어떤 어머니는 열심히 듣고 다시 아이에게 설명하기를 반복했다

다들 희망을 가득 실은 유람선을 타고 바다 너머를 보는 것 같다

그는 섞일 수 없어 주머니에 손을 넣었고, 구겨진 지폐 몇 장이 손에 잡혀

냉커피와 과자 몇 개를 주머니에 손을 넣듯 집어 들었다

금방 교환되는 가치들에 새삼 무력감을 느끼며 지나가는 아이에게

과자를 건네주었다. 공원 안을 가득 채운 온기가 경계심을 허물어 가능했다


갑자기 사라지는 것은 없다, 너희들은 모르겠지만


그는 서서히 걸었다.

맥아더를 앞에 두고 잠시 올려다본다.


당신도 결국 죽은 것뿐이야. 사라진다는 것이 뭔데.


굳이 그 동상 뒤에서 끝을 맞이할 필요는 없었지만,

그는 생각보다 보는 눈이 많다고 느끼며 동상 뒤로 돌아갔다

무심코 걷는 발길에 걸리는 것이 있어 쳐다보는 그에게

한 소년이 필사적으로 입을 손가락으로 가리며 을 외친다

허탈해진 그는 소년 옆에 쭈그려 앉아 한참동안 죽지 않기 위해

숨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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