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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문화/나의 시

낯과 방

 

고개를 넘자 산 속에 둘러싸인 마을이 보였다.

끝과 끝이 한 눈에 들어오는 작은 마을이다.

관광으로도 온 적 없던 외진 곳.

어렵사리 차를 세워두고 짐을 풀지 않은 채 걸었다

금방 둘러볼 수 있으리라

세탁소와 마트, 혼자 먹을 식당 정도만 봐두자

그런 마음으로 걸음을 옮겼다

지나가는 아이들이 무턱대고 인사를 한다

 

너희는 왜 나한테 인사를 하니 / 어른이잖아요, 누구세요

, 이번에 새로 이사왔다 / 선생님이세요

그걸 어찌 알았니 / 딱 보면 알아요

 

유리창에 비친 나를 바라봤다

왠지 알 것도 같다

아이들은 우르르 가버렸다, 물어볼 새도 없이

나도 그렇게 교실을 나왔던가

세탁소는 없었고, 조그만 슈퍼는 문을 닫았다

몇몇 식당 앞에서 어슬렁 거렸지만

들어가지는 않았다, 곧 알게 되겠지

 

관사에는 세탁기가 없었다

정장 몇 벌이 문제가 아니구나.

이웃들은 진짜 집에서 오지 않았고,

그 날은 그 건물에 우리 집만 밝았다

유일한 불빛에 흥분한 벌레들이 창을 부딪혀왔다

 

그만해, 무서워

 

어두운 방 안으로 별빛이 들어온다.

빛의 궤적이 휘어지고 팔다리가 푸덕거렸다

물속으로 가라앉으며 주변의 일렁거림을 응시한다

어느덧 벽도 지붕도 사라진 채 내 몸만 떠다녔다

어둠속에서 빛이 방울이 되고 곧 부풀어 올랐다

별의 숫자만큼 많은 방울들에 둘러싸이고

낯설음은 망울지며 씻겨 나갔다

 

딩동-딩동,

소리에 급히 문을 연다

지푸러진 얼굴을 보며 아이가 웃는다

식사하러 오시래요

갑자기 분주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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