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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문화/나의 시

걷다

 

걷다

 

 

나는

독하지도 않고, 모질지도 못한

사람이라

뒤처지고 지워지기 쉬운

사람이다

 

날지도, 뛰지도 못하는

나는

그저 두 다리가 멀쩡하여

걸어가는, 살아가는

사람이다

 

김장 날에 팔을 걷어붙이고

명절이면 눈꺼풀을 걷어 올리며

그저 그런 소소한 일들을

그보다 더 소소하게 해결하는

손도 작고 발도 작은 사람이다

 

싹싹한 미소를 얼굴에 걸어두고

매일매일 초등학교를 드나들며

아들 손을 잡고 집주변을 거니는

걸음이 가벼운 사람이다

 

걷다가 아름다운 꽃이라도 발견하면

아들과 쪼그리고 앉아

한참 걸음을 멈추기도 하는

빈틈이 있는 삶이다

 

 

* 제38회 새얼백일장 차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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