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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문화/나의 시

달에서 쓰는 편지

아버지, 달에서 불러봅니다.

전 지금 혼자 있답니다.

여긴 낮에도 하늘이 까맣답니다.

 

언젠가 그러셨지요.

밤에만 빛나는 별과 같은 사람보단

모든 별빛을 가리는 태양이 되라고

하지만 이곳은 태양이 별빛을 가리지 못한답니다.

그렇게 훌륭한 사람이 필요가 없습니다.

 

아버지 계신 곳은 시끌벅적 하신가요?

외롭지는 않으시죠? 여긴 커다란 운석이 떨어져도

보지 않으면 모른답니다. 평화롭고 심심한 곳이죠.

 

아버지, 얼굴에 드러났던 갖은 감정의 파편들이 떠오릅니다.

그 당시 같은 감정으로 응대했던 제 모습이 가엽습니다. 죄송합니다.

다시 돌아간다 해도 여전히 이해는 못하겠지만 조금 덜 죄송하고 싶습니다.

 

감정의 극단이 항상 힘들었습니다.

한없이 멀어지려 했던, 지구엔 넘쳐날 그 극단의 감정들이 그립기만 합니다.

당신 옆에서만 보던 세상이 이젠 전혀 가볍지가 않습니다.

무겁고 무섭습니다. 전 이제 투덜거리지 않습니다.

 

아버지, 전 달에 홀로 있습니다.

달 끄트머리 외각에 살고 있습니다.

그리 자주 볼 수 없지만 명절이 되면 환하게 미소 지을 수 있을 겁니다.

 

보고 싶습니다.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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