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창작시

팔굽혀펴기 하나 내려간다 팔꿈치가 접히고 가슴 근육이 꿈틀 지면이 가까워지면 둘 올라간다 가까워졌던 세상이 멀어지고 몸이 일자로 쭉 뻗는 동시에 하나 내려간다 활짝 핀 인생은 짧고, 다시 접힌다 충돌에 의한 충격을 견디고 다시 둘 올라간다 사람이 사람을 돕듯이 땅도 딱딱하기만 한 것은 아니라고 가슴이 다시 꿈틀 뜨거워진다 하나 새해가 되면 결심을 하듯 하나하나 돌아보며 둘둘 몸을 말아버린다 하나둘 하나둘 반복되는 반복 속에 소리는 작아지고 한 걸음 한 걸음이 망설여지지만 두 번의 삶은 없기에 다시 하나 하나 하나 하나 우리는 하나를 외친다 더보기
동행 아빠가 너무 빨랐다 성큼성큼 무심한 발걸음을 쫒아가느라 내 발은 쉴 새 없이 구르고 뒤뚱거렸다 ‘아빠’ 조금만 천천히 가라는 의미이다 ‘어서와’ 나보고 더 빨리 오란다 다시 폴짝폴짝 날듯이 뛰어보지만 이내 다리가 풀려 풀썩 주저앉았다 서러운 마음에 엉엉 울고 있는데 아빠는 ‘뛰다보면 넘어지기도 하는 거야’ 하며 염장을 질렀다 나는 재촉하는 아빠의 팔을 뿌리치며 얼마 전까지 먹던 젖이 다시 튀어나올 만큼 더 크고 우렁차게 최대한 울음을 쥐어짰다 아빠는 결국 나를 번쩍 안아들었다 아빠, 빨리 가면 더 힘들 수도 있는 거야 더보기
기억 다리 밑에서 주웠어, 또 그 얘기다 왜 나의 출처는 상표처럼 붙어있지 않을까 당신을 닮아서 그래, 나는 아무도 닮지 않았지만 그래서인지 이 공방은 끝이 없다 집 구석구석 찾아봤지만 백일 사진도, 돌 사진도 없었다 엄마는 어릴 때 집에 불이 났었다고, 그 때 사라졌다고 한다 그 어릴 때란 동생이 태어나지 않았을 때인가, 하필 그 2년 간 왜이리 많은 일이 일어난 것인가 이모가 동생에게 말했다 엄마를 쏙 빼다 닮았네 고모가 동생에게 말했다 아빠 어릴 때랑 똑같네 동생은 별 관심이 없다 난 어디에서 전학을 왔을까 아빠가 이제 집에 가자고 하셨다 더보기
정원 가지 끝으로 갈수록 잎은 작아진다 과거가 더 또렷한 이미 늙어버린 자의 기억 세포처럼 새로움은 과거와 겹쳐진 일부로만 남았다 나무들의 높이가 모두 같았다 가끔 새 것이 삐죽하게 튀어나와 있었지만 곧 모두 잘려나갔다. 정원엔 늘 일정한 과거만이 허용되었다. 올해 새로 자라날 코스모스를 묻는다면 늘 그 자리에서 새로 피던 과거일 뿐이다 손님들은 하나같이 말했다, 변함없다고 걔 중에 나를 알던 이는 시선을 회피할 뿐 아무도 나의 변화를 언급하지 않았다 계절의 반복은 늘 일정한 시련이다 정원은 그 흐름 속에서도 정확한 기억을 떠올려야 했고, 시험은 계속 반복되었다 향나무가 죽고, 연못의 물이 사라질 때까지 정원은 새순을 허락하지 않았다 더보기
겨울이 오는 계절 1-2 겨울이 오는 계절 1 이젠 차갑게 가라앉는다 옷깃을 여미게 되고 자꾸 뒤돌아보게 만든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뜨거움에 모두 벗어던지고 앞으로 향해 갔었다.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도 모르는 채 멀리 하늘을 산을 보던 눈이 이젠 내 주위를 보고 있다. 집이 그립다. 따뜻한 그네들의 반김이 목마르다 조금만 더 지나면 모든 문을 닫아버리고 구석에서 떨고 있을 내가 그려진다 봄의 꽃은 아름답지만 가을의 단풍은 서글프다 나의 미약한 결정으로 인한 끝은 언제나 두렵다. 더욱더 그네들이 필요한 계절이리라 겨울이 오는 계절 2 차갑게 가라앉는다. 옷깃을 여미게 되고 자주 뒤돌아본다. 얼마 전, 뜨거움에 벗어던지고 오직 앞으로 향해 가던, 그날을 새삼 반성하고 후회한다. 멀리 하늘을, 산을 보던 눈이 소복이 쌓인 눈에 시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