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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6

사람들은 왜 모를까_김용택 사람들은 왜 모를까 김용택 이별은 손 끝에 있고 서러움은 먼데서 온다 강 언덕 풀잎들이 돋아나며 아침 햇살에 핏줄이 일어선다 마른 풀잎들은 더 깊이 숨을 쉬고 아침 산그늘 속에 산벚꽃은 피어서 희다 누가 알랴 사람마다 누구도 닿지 않은 고독이 있다는 것을 돌아앉은 산들은 외롭고 마주보는 산은 흰 이마가 서럽다 아픈데서 피지 않는 꽃이 어디 있으랴 슬픔은 손끝에 닿지만 고통은 천천히 꽃처럼 피어난다 저문 산 아래 쓸쓸히 서 있는 사람아 뒤로 오는 여인이 더 다정하듯이 그리운 것들은 다 산 뒤에 있다 사람들은 왜 모를까 봄이되면 손에 닿지 않는 것들이 꽃이 된다는 것을 2017. 6. 23.
그 여름 그 길로_주금래 그 여름 그 길로 장마 비가 지나가고 해는 서쪽 산에 노을만을 흩뿌려놓고 짙은 어둠에 서서히 사라져버렸습니다. 구불진 길을 따라 털털털 오래된 경운기 소리가 들리질 않습니다. 마을엔 이미 달님이 비춰드는데 아비 모습이 어둠에 사라졌나 걱정이 됩니다. 길 모퉁이를 돌아나가 보니 희뿌옇게 아비가 보입니다. 시름에 묻혀, 술에 묻혀 무심한 세월에 묻혀 휘청대는 아비의 모습입니다. 아비를 부축해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 구불구불한 길이, 그 좁다란 길이 마치 아비인 것 같아 서글퍼지는 길이었습니다. - 예맥야학 '주금래' 강학님의 시 2016. 8. 11.
서울을 떠나는 자에게_정호승 서울을 떠나는 자에게 정호승 서울을 떠나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눈 내리는 서울이 아름답지 않다고 진실로 속삭이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나는 그대의 새벽이 되기를 원하노라 나는 그대 가슴속 칼이 되기를 원하노라 고향으로 돌아가는 노래를 부르며 눈은 내리고 오늘밤은 참으로 쓸쓸하다 무관심을 평화라고 이야기하며 이제는 서울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 눈 덮인 보리밭길 걷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겨울비 오는 골목길을 비에 젖어 휴지처럼 걸어가는 소년이여 아들을 그리워하는 어머니의 울음소리가 오늘밤에는 강을 건넌다 2016. 8. 11.
서른 잔치는 끝났다_최영미 서른 잔치는 끝났다 최영미 물론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운동보다도 운동가를 술 보다도 술 마시는 분위기를 더 좋아했다는 걸 그리고 외로울 땐 동지여!로 시작하는 투쟁가가 아니라 낮은 목소리로 사랑노래를 즐겼다는 걸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잔치는 끝났다 술 떨어지고, 사람들은 하나 둘 지갑을 챙기고 마침내 그도 갔지만 마지막 셈을 마치고 제각기 신발을 찾아 신고 떠났지만 어렴풋이 나는 알고 있다 여기 홀로 누군가 마지막까지 남아 주인 주인 대신 상을 치우고 그 모든 걸 기억해내며 뜨거운 눈물 흘리리란 걸 그가 부르다 만 노래를 마저 고쳐 부르리란 걸 어쩌면 나는 알고 있다 누군가 그 대신 상을 차리고, 새벽이 오기 전에 다시 사람들을 불러 모으리란 걸 환하게 불 밝히고 무대를 다시 꾸미리라 그러나.. 2016. 8. 11.
쉽게 쓰여진 시_윤동주 쉽게 쓰여진 시 윤동주 창(窓)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天命)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詩)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를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들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沈殿)하는 것일까? 인생(人生)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詩)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창(窓)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時代)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最後)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慰安)으로 잡는 최초(最初)의 악수(握手). 2016. 8. 11.
사람들은 왜 모를까_김용택 사람들은 왜 모를까 김용택 이별은 손 끝에 있고 서러움은 먼데서 온다 강 언덕 풀잎들이 돋아나며 아침 햇살에 핏줄이 일어선다 마른 풀잎들은 더 깊이 숨을 쉬고 아침 산그늘 속에 산벚꽃은 피어서 희다 누가 알랴 사람마다 누구도 닿지 않은 고독이 있다는 것을 돌아앉은 산들은 외롭고 마주보는 산은 흰 이마가 서럽다 아픈데서 피지 않는 꽃이 어디 있으랴 슬픔은 손끝에 닿지만 고통은 천천히 꽃처럼 피어난다 저문 산 아래 쓸쓸히 서 있는 사람아 뒤로 오는 여인이 더 다정하듯이 그리운 것들은 다 산 뒤에 있다 사람들은 왜 모를까 봄이되면 손에 닿지 않는 것들이 꽃이 된다는 것을 2016. 8.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