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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문화/나의 시

by 손아무 2026. 4. 30.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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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와 나에게 남은 것이 무엇이겠는가

남기려 살지 않았지만, 아무것도 남지 않았음에

버티기 힘든 나이가 나에게도 오더라

미리 알지 못했음을 안타까워하기엔

이미 알고 있던 것조차 무시하던 나였다

 

텃밭에 뿌린 씨앗이 상추인지 들깨인지

희미하다고 하기에도 민망한 기억의 조각을

억지로 꿰어맞추며 무언가를 남겨보려 하지만

비가역적인 우주의 심보를 감당하기에 나는 너무 늙어버렸고

손 내밀 친구도 은하처럼 멀어져 갔다

이제 와 사랑을 추억하기엔

사랑의 달콤함조차 고통으로 느끼는 나이다

작은 자극에도 무너질까 두려워 멀쩡한 기억조차 지워버리려

수시로 약품 처리며 물리치료를 병행하는 나이다

포멧 버튼이 있었다면 벌써 눌렀겠지만 리셋이 안 되는 허접한 기계라

그저 망가질 때까지 어찌저찌 버텨보는 것이다

 

사람이니 사랑이니

지나고 보면 덧없다던 그치들의 푸념이

마냥 꼰대의 의미 없는 가르침은 아니었음을

벼랑 끝에 선 빈자들이 꾹꾹 눌러 담아놓은

어수룩한 방어기제였음을

인정하지 못하는 자들이 자신에게 발휘하는

마지막 인정이었음을

이제 와 남는 것이 뭐냐고 툭 털어놓으며 깨닫게 된 나이다

 

그래도 술 한잔하는 날이면

돌아선 그녀를 다시 돌려세우고

기억의 조각을 슬쩍 건네보는 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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