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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 상자 -너는 쓰임이 남아 있는가분리수거장에 쌓인 상자들이 물어왔다 -너는 여전히 뜯지 않은 상태인가너덜너덜 매달린 박스 테이프가 조롱했다 차곡차곡차곡차곡말라 비틀어진 채 쌓여가는 시체들이너는 다를 것 같으냐, 물어왔다 나는 상자 하나를 꺼내든다-너는 죽지 않았다 나는 상자를 접어 가능성을 만들었다-너는 아직 무언가를 품을 수 있다 빈 공간은 소중한 물건으로 채워지고나는 혹여 새어나갈까 진득하게 입을 닫았다 받는 사람, 아직 쓰임이 남은 나보내는 사람, 여전히 나를 믿고 있는 너 택배가 상자에 담겨 보내졌다  * 제 39회 새얼백일장 낙방작 2024. 10. 10.
딱히 시라고 쓴 건 아니다 내 마음 속에 돌고 도는 문장이 있어 갑자기 끄적여본다. 다만 내 감정조차 갈무리 못하는 주제에 뭐라고 세상을 논하겠나. 그러니 이건 시가 아니다. 하지만 다른 뭣도 아니기에 시라도 되는 양 보이도록 연을 나눠본다. 행과 행 사이에 뭐가 있든 어차피 읽어줄 사람 없기에 행간을 다시 행에 숨겨놓고, 행간에 다시 행을 구겨 넣어버렸다. 그러니 이미 시는 아닌데 행도 있고 연도 있으니 그야말로 나와 같은 무언가가 아닌가. 뒤숭숭한 마음 뱉어내려고 고상한 단어 몇 개 갖다놔봤자 마음은 여전히 뒤숭숭하고, 오히려 시 같지도 않은 문장 하나하나에 머리까지 복잡해지는 형국이니,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손이 가는 대로 훈민정음을 블록처럼 쌓는 것이다. 세살배기 아기의 놀이 같은 문장 쌓기에 어른들이 달려들어서 잘.. 2024. 10. 7.
[책]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알랭 드 보통)' 책을 다 읽고, 제목을 왜 저렇게 달았을까 한참 고민했다. 작품 뒤편에 나온 원작 제목은 '에세이 인 러브'였던가, 아무튼 저런 제목과는 좀 무관했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 나는 너를 왜 사랑하는가 세 문장의 차이가 뭘까? 왜를 아무데나 붙여도 말이 되는 한글의 우수함을 말하고자 하는 건 아니다. 나는 왜 제목을 저렇게 만들었을까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은 거다. 세 번째부터 시작해보자. '나는 너를 왜 사랑하는가'라는 질문은 사랑의 이유에 초점이 있다. 즉 내가 너를 사랑하는 건 맞는데, 그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이다. 사랑의 이유는 없다지만 한편으로는 서로 끊임없이 이유를 묻고 찾기 마련이며, 그 과정이 사랑을.. 2024. 9. 12.
[소설] 이 중 하나는 거짓말 대학 때 술자리에서 거짓말 게임을 종종 했다. 종종한 이유는 우리에게 거짓말이 필요한, 더 정확히 말하면 거짓말 속에 진실을 담을 필요가 있는 순간이 종종 찾아왔기 때문이다. 다섯개의 진술 중 거짓말은 하나 뿐이었지만 우리는 그 하나의 거짓에 기대 많은 진실을 고해성사하듯 토해냈었다. 작가님도 나와 같은 경험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사람들은 쉽게 거짓말하는 사람이 싫다고 표현하지만 은연 중에 그건 불가능하다는 사실도 알고 있지 않을까. 많은 경우 거짓말은 상대를 속이기보다 자신을 보호하기위해 사용되는 것 같다. 진실을 목도한 상대방의 분노로부터 나를 보호하기위해. 그런 면에서 거짓말을 혐오하는 사람들이 주로 하는 말, '솔직히 말하면 다 이해해줄게.' 같은 말이야 말로 가장 큰 거짓말일 수 있다. .. 2024. 9. 8.
[책] 당신이 누군가를 죽였다 역시 재밌다. 430페이지나 되는 소설을 순식간에 읽어버렸다. 추리소설에 대해 자세한 감상평을 남기는 것은 혹시나 이 글을 볼 수 있는 누군가에게 큰 죄를 짓는 것이기에,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그냥 재밌다.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까지 호기심이 유지되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끝. 2024. 8. 13.
[책] 교사의 변명 이 책은 2023년에 제가 동료 선생님들과 함께 나눈 대화를 편집하여 대화록 형식으로 만든 책입니다.출간은 했지만 주문 생산 방식(POD)으로 출판하다보니 그리 많은 사람이 볼 것 같지는 않네요.표지도 부크크에서 제공하는 기본 표지를 사용했습니다. 좀 볼품없어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대단한 책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 책을 보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바로 현재 교직에 있으면서 혼자라는 외로움을 느끼시는 분들입니다. 교사는 참 외로운 직업입니다. 수업도 혼자하고, 행정 일도 혼자 합니다. 인수인계는 잘 이루어지지 않고, 물어봐도 아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동료라는 관계를 구축하기가 힘들고, 고민을 털어놓기가 쉽지 않습니다.자칫 조금이라도 튀는 행동을 하면 형성성의 논리에 파묻혀 면박을 당하기 쉽.. 2024. 7.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