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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문화/나의 시

이별이 나를 끌고 갔다

by 손아무 2024. 11. 26.

이별이 그리 갑작스럽게 오지는 않는다

저녁밥을 차리시는 어머니를 자연스레 느끼듯이
이별도 오기 전에 슬그머니 자신의 향을 내비쳤다

코를 막거나 더 진한 향기로 감춰보려 하지만
그럴수록 다시 느껴지는 이별의 향은 한층 진해지기만 했다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마음이 나의 시간을 멈췄지만, 다른 이의 시간은 오히려 빠르게 감아버렸다.

나는 더이상 외면할 수 없어 뱉어냈다
웃는 얼굴 뒤쪽에 숨어있던 검은 마음을,
하나도 포장하지 않은 채 그 검은빛을 그대로
토해냈다, 차라리 더럽혀지고 싶다는 마음으로
아름답던 날들을 덮어버렸다
오염된 토양에 풀이 자라지 못하듯이
다시는 너를 마음에 심지않겠다고 외쳤다

천천히 풍겨오기만 하던 이별은
그제서야 고개를 들고 내 손을 잡았다
이별은 그녀가 아니라 나를 끌고 가기 시작했다
나는 열심히 발버둥을 쳐봤지만 바닥이 미끄러워 버틸수가 없었다

멀어지는 그녀의 발밑으로
투명한 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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