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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문화/나의 시

뇌우

by 손아무 2024. 6. 17.

한창 달아오르던 아스팔트 위로 빗물이 떨어졌다. 달궈진 불판 위로 물이 떨어진 것처럼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하늘이 어두워졌고 사람들도 잠시 멈춰 섰다. 도시 곳곳에 생겨난 연못에 절반의 어둠이 갇히고, 난 절반의 희망을 꺼내어 참방참방 연못 위를 달려본다. 떨어지는 물방울과 흩날리는 물방울들이 부딪혀 더욱 잘게 흩어졌다. 구름은 강아지처럼 으르렁대며 마음을 숨겨보지만, 진득해진 감정이 기름때처럼 번들거리며 물방울에 맺혀있었다.

비가 그쳤다. 모든 것을 삼킬 것 같던 물줄기는 되려 도시에 삼켜지고 사람들 속에 스며들었다. 구름은 도망간 것인지 사라진 것인지 보이지 않고, 뒤늦게 달아오르는 아스팔트 위에서 나는 내 위치를 다시 살펴본다. 얼마나 떠내려온 것인가. 태양 빛이 창문에 반사되어 수십 개의 조명이 되었다. 눈부신 도시에 사람들의 뒷모습이 보였다. 내 무대는 관객의 뒤 편에서 밝게 빛나고 있었다.

다시 비가 내렸다. 나는 다시 달렸다. 떠내려가기 전에 떠나보내야 했다. 삼켜지기 전에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야 한다. 다리가 팔이 되고, 팔이 다리가 될 때까지 나는 기듯이 달렸다. 구름은 한 번씩 번쩍이며 나를 비추고, 이어지는 천둥소리에 나는 다시 일어나곤 했다. 도시에 해가 들 때까지 계속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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