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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문화/나의 시

이어폰 낀 세상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간다.

길 건너 횡단보도 옆, 버스정류장에 143번 버스가 막 도착한다.

때마침 신호등이 녹색으로 바뀌고 나는 뛰다시피 걸어가는데

버스는 정류장을 조금 떠나 횡단보도 바로 앞까지 마중을 나온다.

내 손은 문을 두드리고 기사는 손사래를 친다.

짧은 신호는 버스를 출발시킨다.

정류장 5미터 앞에서 일어난 일이다.

 

울컥하여 눈에 보이는 버스번호를 이것저것 적어보지만 사실

하소연 할 곳도 마뜩찮다. 한쪽 구석 멀찍이서

담배에 불을 붙인다. 몇 모금 마시자, 금새

342번 버스가 도착한다. 빈자리가 많다

 

난 가방에서 mp3를 꺼내고, 내 귀에는 이어폰이 자리한다.

철지난 그렇다고 복고도 아닌 어중간한 2000년 초반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앞 사람도, 뒷사람도

거리에 지나가는 사람들도

귀에는 다들 무언가 박혀있다.

 

옆 사람들이 사소한 일상을 주고받는다.

볼륨을 높인다.

어떤 남자가 큰 소리로 전화를 한다.

볼륨을 높인다.

이제 귀에서 들리는 소리가 노랜지,

그냥 소음인지 구별이 안 간다.

어느새 북새통이 된 버스에 어찌 이리도 혼자인지

다른 이들도 그러할까

 

서울이 넓음을, 내 고향이 아님을,

비좁은 버스에서 사무친다.

 

사고가 난다.

가볍게 승용차와 버스가 긁히는 가벼운 사고

무심한 눈으로 창을 내다본 나의 눈과

가벼이 진동한 나의 왼쪽 다리가

그 사실을 알린다.

 

이어폰을 낀 나의 귀는 여전히 무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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