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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교육 칼럼

[5화]변명 & 거짓말

※ 사진 출처 : https://pixabay.com/photo-1848736/

 

 예전에 학교에서 교사교육토론동아리를 만든 적이 있다.

교사들은 의외로 서로 깊은 이야기를 잘 나누지 못하기에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깊은 대화를 나눠보기 위한 방법의 일환이었다. 동아리를 만들고 나서 동아리 이름을 짓기 위해 한참 고민하다 순간 스쳐간 단어가 변명이었다. 도덕적인 측면에서 많은 공방을 벌이는 학교는 수많은 변명을 제작하는 공장처럼 느껴졌고, 한편으로 우리가 변명이라고 치부하는 많은 것들 속에서 우리는 진실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니 변명이라는 이름이 토론동아리의 이름으로서 아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여 뿌듯한 마음이 들었었다.

하지만 토론동아리 멤버였던 한 선생님께서 변명이라는 동아리 이름에 불만을 제기하셨다. 내용인즉슨 변명이라는 단어는 너무 부정적인 느낌을 주며 교사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동아리에 굳이 그렇게 부정적인 용어를 사용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는 말씀이셨다.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나름 고심하여 지은 이름이라 박한 평가에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드는 찰나, 한문 선생님께서 반론을 해주셨는데, 전혀 생각지도 못한 말이라 참 신선하게 다가왔다.

  한문 선생님 왈,

 “변명은 부정적인 단어가 아닙니다. 분별할 변()에 밝을 명()자를 써서 옳고 그름을 가려 사리를 밝힌다는 뜻입니다. 물론 잘못이나 실수를 했을 때 그 까닭을 말한다는 의미가 있지만 그 자체가 꼭 부정적이다, 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어떤 문제든 서로 최대한 자신의 입장을 설명한다는 의미에서 해결책에 점점 가까워지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 변명은 사리를 밝히는 일이었다. 분별할 변()자에 매울 신()자가 두 개나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에서 그 과정이 얼마나 험난한 지 알 수 있다. 사실 현대 사회 자체가 수많은 변명들에 둘러싸인 사회가 아니겠는가.

 

  하지만 변명에 대해 부정적인 느낌을 가진 선생님의 마음을 충분히 공감한다. 실제 이 단어의 사용은 대부분 부정적인 상황에서 이루어지며, 이 단어가 사용된 가장 익숙한 문장은 아마도 변명 하지 마.” 일 것이다. 특히 학교 현장의 다양한 학생들을 통제해야 하는 교사의 입장에서 학생들의 수많은 변명들에 대해 일일이 논리적인 설득을 수행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선은 변명을 멈추게 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밖에 없다.

 

그럼 학생들이 주로 하는 변명은 무엇일까. 변명을 해야 하는 상황에 따라 어느 정도 범주가 정해진다.

 

상황 1. 지각을 한 학생

- 버스()가 막혀서, 아침에 급하게 배가 아파서, 친구를 기다리느라, 학교는 일찍 왔으나 배가 아파서, 엄마가 깨워주지 않아서, 시간을 잘 못 봐서, 알람이 울리지 않아서 등등

 

상황 2. 교과서를 가져오지 않거나 숙제를 하지 않은 경우

- 잊어먹어서, 다 했는데 잃어버려서, 누가 가져가서, 누가 훔쳐가서, 누군가의 장난으로 사라져서, 다른 숙제가 너무 많아서, 잘 몰라서, 시간이 없어서 등등

 

상황 3. 무단 외출, 지각, 결석 등

- 배고파서 사먹으러, 급식이 맛이 없어서, 아파서, 학교가 싫어서, 친구가 싫어서, 혼자 있고 싶어서, 지난밤에 잠을 자지 않아서, 집에 혼자 있는 동생을 돌보기 위해서 등등

 

상황 4. 체험학습 및 소풍 등 야외활동에서 시간을 지키지 않는 경우

- 시간을 몰라서, 길을 잃어서, 놀다보니 정신이 팔려서, 사먹으려고 줄을 섰는데 너무 줄이 길어서, 배가 아파서 화장실을 가느라, 충분히 올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생각보다 시간이 더 걸려서 등등

 

상황 5. 수업시간 자거나 공부를 전혀 하지 않는 경우

- 수업이 재미가 없어서, 원래 싫어하는 과목이어서, 공부해도 성적이 늘지 않아서, 피곤해서,

  자신에게 필요가 없어서, 다른 진로를 결정해서, 월요일, 수요일, 금요일이라서,

  전 시간이 체육 이어서, 1교시, 4교시, 5교시, 7교시여서 등등

 

 

 

※ 사진출처 : https://pixabay.com/photo-1012862/

 

  학생들의 말은 진실일 수도 거짓일 수도 있다. 아니면 진실과 거짓을 적당히 혼합하여 퀼리티를 높이는 친구들도 있다. 이렇다보니 상황발생은 항상 진실공방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며, 학생들은 의심부터 하는 교사에게 자신을 믿어주지 않는다며 서운해 한다. (이 때, 참 신기한 것은 자신이 거짓을 말하였더라도 일단 믿지 않으면 서운한 마음을 먼저 가진다는 것이다. 이 서운한 마음은 거짓말을 하는 마음을 더욱 강화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물론, 교사들이 의심부터 하는 것이 잘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근데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상황 노출은 의심의 뿌리를 깊게 만드는 것이 사실이다. 인간이라는 연약한 생물로서 경험에 의거하여 행동할 수밖에 없는 교사들은 의심하지 않는 척 연기를 하거나 그냥 상황을 덮지 않고서는 그 학생의 욕구를 충족시키기가 힘들다. 하지만 규칙이 지켜지지 않는 걸 묵과하는 무능한 어른이 될 수도 없고, 규칙을 잘 지킨 학생들의 억울한 마음도 생각해야하며, 주변 동료 교사들과 관리자의 눈치까지 봐야하니 대게 교사들의 반응은 상황을 발생시킨 학생에 대한 훈계로 끝이 나게 마련이다. 이때 교사도 학생에게 변명한다. “그래도 규칙을 지키지 않은 것은 너의 잘못이야, 다른 사람들도 모두 각자의 사정이 있어. 너만 특별하게 봐줄 수는 없어와 같은 진부하지만 그 이상 덧붙일 말도 없는 얘기로 상황은 종결된다. 하지만 교사와 학생, 양쪽 모두 개운하지는 않다. 결국 변명을 해야 할 상황이 발생하면 십중팔구 양쪽 모두 마음이 상하게 된다.

 

심각한 듯 썼지만, 사실 별로 대수롭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현명한 사람들은 충분히 서로의 감정을 잘 다독이며 대화하고 상황을 해결한다. 다만 이렇게 비일비재한 갈등 상황들은 사실 학생들이 스스로 충분히 조절하고 대처할 수 있다. 변명을 해야 할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변명을 해야 할 상황도 조금 더 능동적으로 대처하면 된다. , 교사가 묻기 전에 학생이 먼저 말하면 그 순간 같은 말도 변명이 되지 않는다. 먼저 말하라는 것은 교사와 대면하여 말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말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어떤 상황에 놓이게 되었을 때 바로 전화나 문자를 통해 교사에게 전달하면 된다는 의미이다. 변명보고로 바꾸는 것이다. 실제로 이렇게 잘하는 학생들이 많이 있다. 거짓은 지금 만들어지지만 진실은 이전에 발생했었으니까.

 

한편으로는 진실이지만 대단치 않은 이유라 어차피 안 먹힐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일도 많다. 어찌 보면 제일 많을 수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배 아파서 화장실 가느라 지각하는 경우이다. 진실공방을 하기에 불가능하기도 하거니와 굳이 해야 하나 싶기도 한 사안들은 수두룩하다.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말자. 사실 사람은 서로의 말을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 자체를 보는 것이기에 평소에 충분히 신뢰를 쌓고 교감한다면 사소한 문제들은 정말 사소하게 지나간다.

 

그럼 이제 내가 겪은 학생들의 거짓말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례를 얘기해보겠다.

 

 

 학생들에게 고등학교 선택은 대학교 선택과는 좀 다르다. 대학처럼 여러 곳을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소위 낙장불입 시스템이기에 아주 신중하고 그만큼 중요하다. 크게 보면 고등학교는 특성화고와 일반고로 나눌 수 있는데 중학교 3학년이 선택하기에 아주 어려운 선택이다. 자신들의 인생에 있어 거의 최초로 만나는 돌이킬 수 없는 큰 선택이기에 두려움 또한 상당하다. 당시 우리 반이었던 학생은 한부모 가정으로 어머니만 계셨는데 어머니께서 해외에서 일하시는 중이었다. 당연히 연락이 원활하지 않았으며 1학기에 일반고를 보내달라는 말씀만 카톡을 통해 들은 상태였다. 하지만 어머님의 기대와는 다르게 이 학생은 공부에 큰 관심이 없었으며, 특성화고에 가고 싶어 했다. 지속적으로 나에게 여러 특성화고를 얘기했는데 내 생각으로도 차라리 그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2
학기가 되어 원서를 써야할 시기가 다가왔다. 당시 인천 소재 특성화고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가접수라는 것을 넣어야 했다. 이는 진짜 원서접수가 아니라 각 고등학교 별로 자신들의 학교에 진학하고자 하는 학생들을 중학교로부터 명단을 받아 합격과 불합격을 미리 안내함으로써 실제 원서접수에서 불합격하여 추가모집까지 가는 사태를 막고자 하는 명분으로 진행된 것이었다.(명분은 그러했지만 폐단이 훨씬 컸고, 지금은 사라진 상태다.) 가접수가 의미 있기 위해서는 가접수에 원서를 넣지 않은 학생들이 실제 원서접수에서도 넣지 않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합격인 줄 알고 있었던 학생들이 커트라인을 파악해 나중에 원서를 넣은 학생들 때문에 밀려나게 된다. 아무튼 이 학생은 H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싶어 했고, 가접수를 넣어달라고 하였다. 나는 당연히 어머님의 동의가 필요하니 허락을 받으라고 했고, 카톡으로 대화를 해서 허락하신 것을 알려달라고 했다. 해외에 체류 중 이다보니 직접 통화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학생은 소식이 없었고 가접수 기간은 끝나버렸다. 그리고 실제 원서를 접수해야 하는 날, 그 학생은 정말 기쁜 얼굴로 나를 찾아와 어머니가 허락하셨다며 핸드폰을 내밀었다. 미숙했던 나는 그 학생이 거짓말을 한 것이라 추호도 의심치 않고, 핸드폰은 확인할 생각도 않고 학년부장님을 만나러 갔다. 이 학생이 원래 H고등학교를 진학하고자 했고, 상황이 이러해서 허락을 받는 것이 늦어졌는데 진짜 접수도 아닌 가접수 때문에 원서를 못 넣는 것은 너무 불합리하지 않느냐고, 빌고 우기고 땡깡을 피웠다. 가접수라는 것은 고등학교들의 횡포이며 지침에도 없는 일이라며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결국 암묵적 합의 였던 가접수의 룰을 깨고 H고등학교로 원서 접수를 하였다.(참고로 이 원서라는 것이 나이스라는 교무행정 시스템을 통해서 이루어지므로 원서를 출력할 필요도 학교를 찾아갈 필요도 없다. 단순히 전산 상에서 이루어진다.)

 

 

  이 학생은 H고등학교에 합격하였고, 나와 이 학생 때문에 불쌍한 누군가는 떨어졌으리라. 누군지도 모르는 학생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으나 그보다는 이런 고입 진학 시스템에 대한 분노를 키우며, 동시에 우리반 학생의 합격을 축하했다. 정작 문제는 그 다음에 일어날 줄도 모르고. 며칠 뒤, 이 학생의 어머니께 전화가 걸려왔다. 왜 일반고에 보내지 않고 특성화고에 넣었느냐고 따지셨다. 나는 당황했다. 어머니께서 허락하신 것 아니냐고. 어머니께서는 절대 그런 적이 없다고, 일반고에 보내달라지 않았느냐고 화를 내셨다.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특성화고에 합격하면 그 다음 전형인 일반고 전형에 원서를 넣지 못한다. 또한 합격하고 나면 취소할 수도 없다. 등록을 포기할 경우 재수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 어머님께서는 며칠 뒤 해외에서 한국으로 돌아왔고 바로 학교로 찾아오셨다. 이 사태를 어떡할 것이냐고 추궁했지만 내가 무엇을 어찌 하겠는가. 결과적으로 교육청과 H고등학교의 도움으로 학부모의 확인 없는 원서 서류가 원천 무효가 되어 반려 처리되며 추가모집으로 일반고에 진학을 하게 하긴 했는데, 그 과정이 대략 두 달 정도 걸렸으니 그 때 참 많이 늙었던 것 같다.

 

※ 사진 출처 : https://pixabay.com/photo-992753/

 

 당시 그 어머님께서 학교로 찾아와 애들 말을 어떻게 믿느냐.’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은 나에게 엄청 충격적이었다. 애들은 거짓말을 할 수도 있는 존재인데 그것을 덜컥 믿으면 어떡하느냐고. 부모가 자신의 자식을 믿지 말라고 말하는 형국에서 별로 생각나는 말이 없었다. 금전적 보상도 언급하셨으나 다행히 금전적 보상은 없었고, 두 달 간 후속 처리 과정만 잘 진행하여 마무리되긴 했으나 이 사건에서 내가 잃은 것이 너무 많았다. 더불어 그 학생은 이 사태가 불편했는지 어머님께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친구들에게는 오히려 내가 마음대로 원서를 넣었다는 소문을 흘리기까지 했다. 이 모든 과정이 지나가는 동안 난 그 학생에게 거짓말을 한 것으로 한 번도 추궁하지 않았다. 그 이후에도 그 학생과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 학생의 변명을 듣는 것이 두려웠던 것 같다. 너무 큰 실망감에 빠져들 것 같아 두려워 애초에 대화하기를 포기한 것이다. 다음해 그 학생이 스승의 날 찾아왔을 때, 정말 솔직히 보기가 싫었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찾아온 것도, 내 앞에서 웃는 것도 난 감당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동시에 깨달았다. 그 사건은 저 학생에게는 별것 아닌 일이구나. 작은 거짓말을 했는데 들켜서 조금 일이 복잡해진 정도의 그냥 일상적인 지나감이었구나.

 

 그리고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 누군가를 마음대로 믿는 것도 잘못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믿기 위해서는 먼저 의심을 해야 하는 구나. 최대한 의심하고 검증한 뒤, 그 다음에 믿는 것이 진짜 믿음이며, 더더욱 미숙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할 때는 그 과정이 철저해야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고 뒤부터는 학생들에게 대놓고 난 너희들을 믿지 않는다.’라고 말하게 되었다. 내가 의심을 한다는 사실을 미리 알리는 것은 어떤 면에서 서로에게 부담을 줄이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몇 마디 덧붙이긴 한다.

 

난 너희들을 믿지 않는다. 그렇다고 너희들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아직은 흔들릴 수 있는 너희들을 무작정 믿는 것만이 어른의 역할이 아니기에 믿지 않는 것이다. 충분히 의심하고 의심해서 너희가 엇나갈 때 바로 잡아주기 위해서이다. 그런 긴 시간이 지나고 나면 우리는 꽤 서로를 신뢰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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