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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교육 칼럼

[3화]수업에 대한 고찰

※ 사진 출처 : https://pixabay.com/photo-1209820/

 

 일반적으로 교사에 대해 생각할 때 수업을 하는 모습을 먼저 떠올릴만큼 수업은 교사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업무이다. 물론 실제 현장에서 전체 업무 중 수업이 차지하는 비율은 생각보다 훨씬 적지만 그럼에도 교사에게 수업은 정말 중요하다. 왜냐하면 수업을 하면서 교사가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첫 학교에 발령받기 전, 꽤 다양한 강의 경험을 가질 수 있었다. 우선 과외를 했었고, 학원 강의도 했으며, 야학에서 봉사활동으로 여러 과목을 수업하기도 했다. 천문대에서 일하며 처음 보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강의를 한 적도 있다. 나름 꽤 다양하고 긴 경험을 가졌지만 그럼에도 첫 수업은 떨렸고, 지금도 시작하기 전 약간의 떨림이 있다. 준비되지 않은 수업을 들어갈 때는 식은땀이 나기도 한다.

수업은 여러 번, 그리고 다양한 경험이 있다고 해서 꼭 잘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교사가 되기 전에 내가 했던 수업은 목적성이 뚜렷했다. 그리고 수업을 듣는 사람들의 목적 또한 분명했다고 생각한다. 잠깐 그 시절을 회상하자.

 

 학원에서는 이론을 잘 설명하고, 문제를 쉽게 풀 수 있는 능력을 전달해주고자 했고, 그로 인해 학생들의 성적이 오르면 목적을 달성한 것이었다. 학원에서도 공부에 관심없는 학생들이 분명 있었지만 학교 만큼 많지는 않았다. 동시에 나는 학원에서 강의를 할 때 나 스스로 나의 영역을 한정시키는 면이 있었다. 생활 태도는 물론이며, 세상을 살아가며 내가 느꼈던 깨달음, 보다 어른으로서 해주고 싶었던 조언 들이 생각나더라도 가급적 말을 삼갔다. 웬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전혀 준비되지 않았던 시절 했던 과외는 분명 그 학생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했으리라 생각한다. 

 

 야학에서 봉사활동을 할 때, 동시에 학원에서 강의도 했었다. 당시 학원에서의 학생들과 야학에서 수업을 듣는 어르신들의 모습이 참 비교가 많이 됐었다. 어린 학생들은 잠재력이 있었지만 공부에 흥미가 적었고, 어르신들은 열정이 넘쳤지만 그만큼 몸이 따라가지는 못했다. 그 대비되는 모습을 보며 '차라리 인생이 거꾸로 흘러간다면 인간은 조금 더 잘 살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던 적도 있다. 배움에 목마른 어르신들에게 나의 실력은 형편 없이 부족했지만 그 분들은 불평 대신 열정으로 그 빈공간을 채워주셨다. 사실 그 분들이 스승이었다.

 

 당시 시를 짓는 과제에서 70대 할머니께서 쓰셨던 시를 잠깐 소개한다.

 

내 마음

 

                              이금진


고요하게 흐르는 물줄기처럼

 

마음 속에도 물이 천천히 흐릅니다.

 

천천히 흘러가는 물을 바라 봅니다.

 

그것이 행복입니다.

 

누구나 마음 속에 가까이

 

아주 가까이 들어 있습니다.

 

 야학을 하며 사람의 나이가 그 사람의 능력과 인격을 대변해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또한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사람의 능력이 그리 크게 후퇴하지 않는다는 사실 또한 느꼈다. 

 

 천문대에서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강의는 앞선 학원 강의와 야학과는 다른 특징이 있다.

우선 일회적인 만남이기 때문에 기존에 래포(Rapport)가 형성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 대상이 된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유명한 강사들의 강의처럼 짧은 시간에 호감을 얻고 집중시키지 않으면 사람들은 금새 흥미를 잃고 투덜거리게 된다. 한 번 꼬이기 시작하면 지속적으로 분위기가 다운되기 때문에 초반이 중요하다. 일종의 '쇼'를 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함께 일했던 강사 중에는 학문적 측면을 강조하고 특별히 흥미를 돋우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부류도 있긴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강사들은 손님들이 웃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야 강의가 즐겁다. 다만 신기한 것은 앞서 언급한 '흥미를 돋우기 위해 전혀 노력하지 않는' 강사의 강의도 사람들은 꽤 재밌게 듣는다. 그 특수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그 강의를 듣기 위해 힘써 방문한 사람들의 태도는 상당히 진지하다. 열심히 듣고 자식에게 알려주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스로 강의에 빠지고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수업에 있어 능동적 참여의 힘이라고 할 수 있다. 학문적 내용 자체 만으로도 재미있을 수 있는 것이다.

 

※ 사진 출처 : https://pixabay.com/photo-1044107/

 

 학교의 수업도 새로운 지식을 알려주기 위해 강의를 하는 것이지만 학원, 야학, 천문대와는 청중의 태도가 판이하게 다르다. (그러한 인식 때문에 최근 학생 참여 수업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무조건 활동과 결과물만을 강조하는 지금의 흐름은 방향성이 어긋나 있다고 생각한다.)

 학교에서 교사들은 '어떻게든 수업을 빠지려는 학생'과 '수업 외적인 필요성(내신성적, 진학 등)에 의해 수업을 듣는 학생' 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이 절대 다수는 아니지만 상당한 비율을 차지하고 있으며, 특히 '수업 외적인 필요성에 의해'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그 필요성이 없어지는 순간 '어떻게든 수업을 빠지려는' 학생으로 둔갑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은 마치 창과 방패가 대치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교사와 학생은 수업 시간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경쟁하는 '적'인 것인가. 가르치려는 자와 거부하는 자의 대결은 항상 거부하는 자의 승리이지 않을까?

 

 또다른 어려움 하나 이야기 해보자. 학생들이 어떤 과목을 싫어하게 되는 원인이 교사인 경우가 많다. 사실이다. 나 역시 그랬고, 지금도 역시 많은 학생들이 교사에 대한 선호도에 따라 과목에 대한 선호도가 변화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어떤 교사가 좋다고 해서 반드시 그 과목을 좋아하여 열심히 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냥 그 교사만 좋아할 수도 있다. 상대적으로 다른 과목보다 열심히 할 수는 있겠지만(특히 수업상황에서는) 진정한 의미에서 학습이 진행되는 경우는 드물다. 또한 교사는 학생이 교사를 좋아하기 보다는 교사의 수업을 좋아하길 원하지만 현실적으로 그 두 가지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이유로 인기 있는 여학교의 남교사, 남학교의 여교사 들은 지나친 자신에 대한 관심으로 인해 자신의 수업이 사라져가는 것에 대해 심각한 실망감을 느끼기도 한다.(우리나라에서 타인의 외모에 대한 관심은 정말 너무 지나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대학생 멘토링' 같은 좋은 시도도 실제 현장에서는 멘토링을 하는 대학생의 외모에 따라 학생들의 만족도가 달라질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교사는 쉽게 학생이 자신의 과목을 싫어하도록 만들 수 있지만, 자신의 과목을 진정으로 좋아하게 만드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 상황이 지속되고 반복되면 어느 순간 교사는 자신감이 하락하고 포기하게 될 수도 있다. 차라리 과목에 대한 호불호에 대해 교사의 영향이 거의 없다고 믿는 것이 교사 자신의 정신 상태를 유지하고, 지속적으로 수업을 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참 슬픈 현실이다.

 

 물론 수업이 사실 그렇게 부정적인 요소들만 가득차 있는 것은 아니다. 눈빛이 반짝이는 학생들이 있고, 순수하게 학문에 빠져 신나게 공부하는 학생들도 적지 않다. 다만, 다른 부정적 요소들이 가지는 파괴력이 워낙 크기에 우리는 직면하고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글을 시작하며 수업은 교사들이 힘을 얻을 수 있는 시간이기에 중요하다고 했다.

 맞다. 수업은 힘들지만 교사들은 분명 수업을 하며 힘을 얻고 미래를 본다. 별 의미도 없어보이는 행정 업무 속에 파묻혀 있을 때보다 학생들 사이에서 수업을 하는 것이 훨씬 즐거운 일임에는 분명하다. 비록 행정 업무에 밀려 미처 수업 준비가 만족스럽지 않을 때조차 수업을 하고 있는 것이 훨씬 보람차다.

 

 나 또한 수업에서 많은 힘을 얻었다. 난 좋은 제자들을 많이 만났던 것 같다. 힘든 내색이라도 보이면  위로해주고, 잘 설명을 못했어도 이해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던 고마운 제자들이 많았다. 언젠가 어떤 학생이 나에게 진지한 얼굴로 "선생님에게 제자는 무엇인가요?"라고 물었다. 나는 "학교에서 유일하게 내가 에너지를 쓰는 것이 아니라 받는 존재인 것 같다."라고 대답했었다. 어느 정도는 멋있게 말하려고 의식한 것도 있지만 정말 진심이었다.

 

 그래서 난 수업을 잘하고 싶었다. 잘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뻔하다. 수업을 하고 학생들에게 자주 물어봤다. 지금의 방식이 괜찮으냐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는 학생들이 많을 경우 이유를 묻고 어떤 방식이 좋으냐고 묻기도 했다. 상당히 많은 학생들이 그 전학년도에 가르쳤던 선생님의 수업방식에 익숙해져 나의 수업 방식에 적응을 못하고 있음도 알게 되었다. 어떤 획기적인 변화를 수반한 일회성의 수업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1년 간 지속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변화를 주었다. 첫 해에는 시험을 치고 나서 새롭게 진도를 나갈 때마다 수업 방식을 바꿨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변화는 정말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미미한 것이다.

 

 단순히 이런 것이다. PPT를 이용해서 진도를 나가느냐, 교과서와 판서를 이용해서 나가느냐, 아니면 학습지를 이용하느냐. 학습 정도를 확인하기 위한 형성평가 문제 풀이는 소단원 마다 하는 것이 좋을까, 또는 중단원 마다 하는 것이 좋을까. 짧게 설명하고 문제를 많이 풀까, 차근차근 이론을 깊게 설명할까. 지금 학년에서 언급되지 않는 개념을 설명함으로써 전체적인 이해를 시키는게 좋을까, 우선 제시된 내용까지만 언급하고 적당히 암기를 하는 것이 나을까. 등등의 별 것 아닌 질문들이었다.

 

 위의 과정은 거의 100% 나를 위한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질문을 할 때마다 거의 비슷한 수의 학생들이 서로 다른 방식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한 2년 쯤 묻고 나니 물을 필요가 없어졌다. 어차피 100%가 없었으니. 중요한 것은 나의 수업 방식에 내가 스스로 확신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나는 내 수업을 좋아하고, 편안하게 수업을 진행할 수 있는가. 수업을 준비하기에 무리가 없으며, 어느 정도 자유도가 확보되어 있는가, 하는 점이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랬든 저랬든 수업은 교사가 하는 것이고, 스스로 전문가라는 인식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모든 학생을 맞추는 것은 불가능이다. 아무리 수준별 수업, 맞춤형 수업, 학생 중심 수업을 외쳐도 모든 학생에게 맞는 수업은 없다는 것이 현실이다. 오히려 교사의 개성에 맞는 수업에 학생이 맞추는 것이 훨씬 쉽다. 뿐만 아니라 그래야 학생이 수업과 교사를 통해 다양성과 재미를 배울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모든 수업이 같은 방식이라면 무슨 재미로 1교시 부터 6~7교시까지 수업을 듣겠는가. 어떤 수업 방식이 '좋다'라고 주장하며 밀어붙이는 지금의 교육계는 훨씬 중요한 교사들의 개별적 가치를 파괴하고 있다고 믿는다.

 

※ 사진 출처 : https://pixabay.com/photo-1674106/

 

 4차 산업 혁명의 시대, 평생 직장이 없는 시대라고 다양성과 창의성을 강조하면서 그것을 가르칠 교사들의 수업에 한해서는 국가중심교육과정, 성취평가제, 맞춤식 입시 교육이라는 틀에 가두어 마음대로 주물럭 거리는 것이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여담이지만 최근 창의성이 대두되며 관련한 연수가 참 많다. '창의성 함양을 위한 수업 방법 개선'에 대한 연수를 강의식으로 획일적으로 하는 것이 말이 되는가? 아니 처음부터 창의성을 교육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인가? 높으신 분들은 아직도 기계주의적 사고 방식에 빠져서 교육을 어떤 식으로 행하면 그 결과가 딱 산출될 것이라고 믿는 것 같다. 장담하건데 그건 결단코 불가능하다. 변화는 변화를 해야할 사람들이 주체적으로 하는 것이 맞으며, 그 변화를 유도하고 싶다면 의무가 아니라 권리의 형태로 부여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의 교사들은 전부는 아니겠지만 대부분 열정과 능력이 충분한 사람들이다. 제발 그 능력을 발현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길 바란다. 물론 교사 스스로의 가치관에 의해서.

 

 난 사실 아직도 좋은 수업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지 못한다. 더 슬픈 것은 앞으로도 꽤 긴 시간 계속 모른 채 수업을 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수업을 잘하고 싶고, 수업에서 많은 힘을 얻고 싶지만 수업에는 정답이 없다. 같은 내용에도 들어가는 학급에 따라, 같은 학급이라도 매번 수업의 양상은 다르고 점점 더 미궁에 빠지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그 다양성을 즐길 수 있다면 충분히 행복한 수업이 가능할 것이다. 그 즐거움을 느낄 심적 여유가 교사에게 필요한 이유이다.

 

※ 사진 출처 : https://pixabay.com/photo-233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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