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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교육 칼럼

[6화]교사의 승진

※ 사진 출처 : https://pixabay.com/photo-388914/

 

한없이 괴롭히던 취업의 관문을 돌파하면 승진이라는 관문이 기다린다고 한다.

계급, 나이와 학벌, 성별을 초월한 위계관계 속에서 꼭대기에 올라가기 위한 경쟁은 치열하지만

사람들은 그 결과의 달콤함을 믿기에 끝없이 노력한다.

때론 그 경쟁이 아름다워 보이기도 한다. 어쨌든 어느 정도 사람을 성장시키기는 하니까.

학생들에게 과도한 경쟁을 부추기는 교육을 지양하라는 시대의 요구는 직장 세계에서는 통용되지 않는다. 물론 직장 내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에서도 경쟁은 치열하다.

 

그렇기에 의문이 생긴다. 왜 경쟁을 지양해야 하나. 그에 대한 답은 명백하다.

과도한 경쟁은 사람을 피폐하게 만들고 행복하게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간이라면 상생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그런 자세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인간은 정글의 세계 속 짐승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러한 대의는 발현된 역사가 지극히 짧다.

그렇기에 아직 정착되지 못했고, 여전히 우리는 노력해야 한다.

조금만 방심하면 많은 유혹이 인간을 기다리고 있다.

효율적 경쟁을 위해, 살아남기 위해 각 종 파벌을 형성하고, 타인을 비방한다.

집단 내에서 공동의 욕받이가 늘 탄생하는 이유는 그러한 본능적 속성이다.

 

※ 사진 출처 : https://pixabay.com/photo-817369/ 

 

학교는 특수한 공간이다.

그 시대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상을 미래에 실현하기 위해 준비하는 곳이다.

요즘은 학교가 개인적 차원의 미래 준비에 초점이 많이 맞춰져 있지만 넓게는 사회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미래를 대비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학교는 미래지향적인 가치를 기준으로 모든 일들이 이루어져야 할 공간이다.

 

다른 공무원들과 다르게 교사들이 교감-교장을 제외한 승진 체계가 없는 것은 이러한 이상의 발현이다.

평등과 자유의 가치를 전수하고 깨닫게 이끌 교사들이 서로 위계가 있는 것은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엄밀히 교사-교감-교장을 승진 체계로 이해하는 것도 그런 면에서 문제가 있으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인식하기에 우선 교감-교장이 승진 체계라고 하자.

그리고 오늘도 교사들은 여느 직장인들처럼 이 승진을 위해 무던히 노력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교사들의 승진 시스템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간단히 생각하면 특이한 경우를 제외하고 학교당 1명의 교감과 1명의 교장이 존재한다.

학교에 약 40~80명 정도의 교사들이 있다고 생각하면 이 승진의 문은 턱없이 좁다.

모든 교사들이 승진을 위해 노력한다면 평균 경쟁률은 약 50 : 1 정도 될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교사들의 승진을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 사진 출처 : https://pixabay.com/photo-2861820/

 

학교는 기업체가 아니다.

산술적으로 성과를 산출할 수 없을뿐더러 만약 있다고 하더라도 그 결과에 작용한 요인이 너무나 다양하다. 특정 교사의 성과라고 증명할 수 없다.

또한 미래지향적인 학교에서 당장의 근시안적인 성과를 위해서 행동해서도 안 된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승진이 존재한다면 평정을 해야 한다.

이 필요성 때문에 승진 가산점이 존재한다.

기본적으로 누구나 쌓이는 경력 이외에 개별 교사들을 구별하기 위해 가산점을 적용하는 것이다.

교육부와 교육청은 이러한 점을 십분 활용하여 교사들을 움직이고자 한다.

가산점의 대상이 되는 교육행위는 아주 간단한 법칙으로 정해진다.

대부분의 교사들이 꺼리지만 교육적으로 그 필요성이 있는 교육 행위-는 가산점의 대상이 된다.

 

대표적으로 2012년 학교폭력이 사회적 이슈가 된 이후 학교폭력 가산점이 생겼고, 담임 기피 현상은 담임 가산점을 만들었다.

주로 교육부에서 주관하는 각 종 연구학교, 정책추진학교 등은 맡은 학교에 근무하는 교사들에게 일정 비율만큼 가산점을 주기도 하고, 수업 연구 발표대회 등 교사들의 능력 향상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개인적 가산점을 배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가산점은 항상 일정하게 고정된 것이 아니라 없어지기도 하고, 새로 생기기도 한다.

청소년단체(보이스카웃 등) 가산점과, 통합학급(특수학생) 담임 가산점은 없어질 예정이고,

유공 교원, 학교폭력예방 가산점 등은 새로 생긴 가산점이다.

새로 생기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하니 승진 가산점이 필요한 사람은 불나방처럼 가산점을 쫓아다니며,

반대쪽에선 그 가산점을 이용하여 불나방을 조종하는 것이다.

가산점 제도는 사회의 필요에 맞게 보수적 집단인 교사들을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는 있으나 많은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 사진 출처 : https://pixabay.com/photo-1922074/ 

 

우선 교육 행위에 가산점을 부여하는 것은 그 교육 행위에 대한 가치를 훼손시킨다.

 

불과 몇 년 전만해도 담임을 하고 싶어 하는 교사는 학생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고, 그 안에서 행복을 찾을 줄 아는 교사처럼 여겨졌으나 담임을 대상으로 하는 학교폭력, 담임 가산점이 생긴 이후에는 담임을 희망하는 교사를 욕심에 가득 찬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이는 어떤 교육 행위에 대해 순수한 의도를 가진 교사, 승진에 관심이 없는 교사가 그 교육 행위로부터 배제되게 만드는 효과를 가져 오며, 동시에 상대적으로 순수하지 못한(오직 가산점만을 생각하는) 교사들에게 그 교육행위를 맡기게 되는 효과도 가져온다.

본인의 승진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잘못 된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효과는 그 행위에 대한 가치를 훼손시키고, 때문에 그 행위 자체에 대한 순수한 노력을 감소시킴으로서 전체적으로 질적 하락을 불러오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학생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치지는 못한다.

 

특수한 예를 한 가지 더 말해보겠다.

 

 예전에 특수지(주로 섬 지역)에 있는 학교는 젊은 교사들이 가기 어려웠다.

 특수지 학교의 경우 사람들이 꺼려하는 만큼 많은 가산점이 부여되었고, 때문에 어느 정도 경력이 있는 사람들만 경쟁에서 승리하여 입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특수지 가산점을 대체 할 수 있는 유공교원 가산점이 생긴 이후로 급격하게 특수지 학교로 가고자 하는 교사들이 줄어 들었고, 이제는 거의 신규 교사들로 특수지 학교의 정원을 채우고 있는 실정이다.

 

 이 사례에서 보면 특수지 가산점이 중요한 시기는 학교 교사들의 평균 경력이 아주 높았으며, 반대로 가산점의 중요성이 적은 시기에는 평균 경력이 아주 낮아졌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는 두 경우 모두 학교와 학생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지 못한다. 어떤 단체나 사회든 여러 연령대가 함께 공존해야 건전한 사회를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선택을 하는 교사들을 비난해야 할 것인가?

 

 나는 그러고 싶지는 않다. 그들의 욕망이 특별히 나쁘다고 보기는 힘들다. 사회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슷하게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교사들을 특수지 학교로 보내기 위한 수단이 가산점이 아니었다면 조금은 결과가 다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교사가 되기 전 한 번쯤 꿈꿨을 섬 마을 선생님이라는 로망을 없앤 건 결국 교육계 스스로의 선택이었고, 그 중심에 가산점이 있었지 않을까.

 

※ 사진 출처 : https://pixabay.com/photo-1782430/ 

 

다음으로 가산점은 학교의 민주적인 문화를 방해한다.

 

앞서 말했듯 가산점은 승진하고자 하는 교사들을 움직이기에 강력한 무기가 된다.

그렇기에 교육계는 가산점을 약속하고 사업을 공모하며, 실적이 필요한 관리자는 공모 사업에 동원할 교사들에게 가산점을 다시 약속한다. 겉으로 아무리 고귀한 말이 오가더라도 결국 마지막에 가서 교사들이 눈여겨 확인하는 것은 그 사업의 의미가 아니라 누가 가산점을 받았는가, 하는 점이다. 승진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자신이 생각하기에 자격이 없는 이가 가산점을 받을 경우 분노하고 그 사람을 미워하게 된다. 자신이 받을 것이라 믿었던 사람이 받지 못하는 날에는 다시는 보지 않을 것처럼 반목하기도 한다.

 

이 모든 과정에 민주적 학교 문화는 보이지 않는다. 가산점 대상을 정하는 과정도 그 결과도 제대로 공표하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 사람들은 어둠 속에서 불신만 쌓는 것이다.

 

학교가 사업을 따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어찌 보면 웃긴 이야기지만 사업의 필요성을 인정하더라도 사업의 성격과 방향에 대해 그 사업을 추진할 구성원들과 제대로 교감을 하지 않은 채 되면 무조건 좋다는 식으로 공모하고 있는 현실을 보면 일선 학교와 교사들에게 대부분의 공모 사업은 그 자체의 가치를 잃은 채 자랑거리와 승진거리 밖에 아닌 것 같다.

 

조금 다른 측면에서도 가산점은 민주적 문화를 방해한다.

 

예를 들면 학교폭력예방 유공점수의 경우 생활지도를 한 모든 교사에게 주어지지 않으며,

일부는 생활지도와 아무 상관이 없는 교사에게도 줄 수 있다.

가산점이 학교 내에서 동일한 일을 하더라도 같이 주어질 수 없는 구조이기에 교사들의 경쟁을 유도하고 파벌을 형성하게 만드는 것이다.

연구학교나 시범학교의 경우도 학교 구성원의 75%, 40% 이런 식으로 주어지는데 이 자체가 결국 갈등을 유발하는 요소가 된다.

 

※ 사진 출처 : https://pixabay.com/photo-2712304/

 

예를 들어 40% 정도만 가산점을 받을 수 있는 시범학교 사업이 있다고 가정하자.

여러 이유로 민주적인 문화가 저해될 수 있다.

 

 우선 전체 교직원들 중 승진을 전혀 하지 않을 사람은 자신이 이 사업에 어떤 도움도 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며, 대신 가산점을 받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도 이런 사람에게는 큰일을 주거나 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학교 단위 사업에 아예 일이 없을 수는 없으므로 이 사람은 이 사업이 진행되는 동안 계속 불만을 표시할 것이다.

 

 승진에 관심이 있는 사람 중 능력이 있거나 적극적인 사람은 사업에 열심히 일하고 가산점을 받으므로 큰 불만은 안 생길 것이다. 하지만 관심이 있지만 능력이 턱없이 모자라거나 전혀 일을 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이 가산점을 받을 경우는 다른 모든 교직원들에게 박탈감을 주고, 관리자에 대한 불신이 만들어진다.

 

 마지막으로 승진에 대한 어떤 선택을 하지 않은 교사들도 있다. 주로 아직 젊은 교사들에 해당하며 승진에 대해서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상태이다. 하지만 학교 단위 사업이므로 일을 안 할 수는 없으며 성격이 적극적이거나 거절을 못할 경우, 또 다른 구성원들의 성향에 따라 상당히 많은 일을 맡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은 승진에 대한 확실한 선택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또는 젊다는 이유로 마지막에 가산점을 받지 못할 가능성도 다분하다. 이러한 사람이 다음에 어떤 선택을 할지 상상해보라. 충분히 부정적이다.

 

 

가산점은 끝이 없다.

 

예전 CD게임 시절보다 온라인 게임 시장이 위험하고 파괴적인 것은 끝이 없기 때문이다.

끝이 없는 경쟁 속에 자신의 캐릭터를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하지만 올라가는 것은 쉽지 않다.

학생들을 그 경쟁으로부터 탈출시키고 상생시키기 위한 교육을 하라며,

교육계는 교사들을 끝없는 경쟁 속으로 끌어들인다.

가산점은 없어지고 새로 만들어지며 만점이 정해져 있지 않은 세계이다.

교사들의 승진은 완전 상대평가로서 극소수만 승진하고, 대부분은 포기한다.

애초에 시도하지 않는 교사들도 상당수며, 그 두 집단은 서로를 불편해한다.  

 

일부 유저들이 완전히 장악한 게임은 결국 다수의 유저로부터 외면 받으며 쇠퇴의 길을 걷는다.

갈수록 예전에 비해 승진을 포기하고 자신의 삶을 찾으려는 교사들이 많아지고 있는 추세이다.

그들이 학교를 사랑하고 자발적인 참여를 하도록 하기 위해 가산점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교육계도 이제 상생의 방법을 찾아야 할 때이다. 더이상 교사의 행복을 간과하지 말자. 

승진은 축하받으면서 해야 기쁜 것이다. 현재처럼 손가락질 받는 승진은 차라리 없어지는 것이 더 낫다.

 

그렇다고 교직의 성직관을 들어 교사들에게 희생과 봉사를 강요하지는 말자.

지금 교사들에게 강요하는 희생과 봉사의 대상은 마치 관리자 또는 학부모인 것처럼 느껴진다.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교직의 성직관을 언급하는 것은 반발심만 키울 뿐이다.

교사가 노력해야 할 대상은 관리자가 아니며, 교육부도 아니고, 정치 세력도 아니다.

일부 학생도, 일부 학부모도 당연히 아니지만 그렇다고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할 수도 없다.

 

마치 답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것은 결국 현장에서의 답이 개인의 몫이기 때문이다.

교사가 행복하지 않으면서 결코 학생들에게 행복을 나눠줄 수 없다.

행복하지 않으면 능동적일 수 없고, 끝없는 경쟁 속에 행복할 수도 없다. 

지금의 관리자(교감-교장)들은 그 경쟁의 승리자이겠지만 후배 교사들에게 그 유산을 남기지 마라.

가산점의 노예로 만들지 말고 서로 협력하며 노력하고, 그 속에서 행복한 학교 문화를 이루어야 한다.

 

※ 사진 출처 : https://pixabay.com/photo-163523/

 

추가. 만약 학교 단위 사업이 꼭 필요하다면 가산점 대상자는 전체 교직원이어야 할 것이다.

어중간한 비율은 결국 배제의 수단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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