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문화/나의 시172 깜박깜박 급히 가려 고속도로를 탔다. 부족한 시간을 어떻게든 속력으로 매꿔보려고, 과속을 할 속셈이었다 차는 가다서다를 반복한다는 교통방송과는 달리 서다가다섰다. 주로 멈춰있는 고속도로 풍경은 꼭 시간이 정지한 상태와 같았다. 이 도로 위 사람들은 어떤 생각들로 이 정적을 채워나가고 있을까 시간의 틈을 메워보려던 시도를 포기하고 비어있던 생각의 공간으로 빠져든다. 와중에 `칼치기'를 시도하는 놈이 보였다. 너구나, 이 정체의 원인. 시야 속의 외제차를 찾아본다. 많구나, 경제가 어렵다며. 무작정 차선을 바꾸며 밀어붙이는 화물차. 깡패새끼네, 깜박이는 어디갔니. 당최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다. 순간, 경적이 울렸다. 돌아오는 정신의 속도 보다 자동차의 움직임이 빨랐다. 충격과 함께 드는 분노, 문을 열고 나갔.. 2018. 8. 15. 고름 바닥에 나뭇자락이 솟아있다. 대체로 가지런한 속에서 불쑥, 그 뾰족함은 곧 누군가의 속살을, 그 생채기는 곪아 날카로운 가시로 염증을 실어나를테지 친구가 물었지, 바이러스는 어떻게 옮겨다니냐고, 우리는 늘 같이 살잖아 한숨 섞인 답변과 바이러스가 다시 퍼지고, 아, 어머니는 어찌 견뎌내셨나. 구멍난 양말과 채워지지 않는 항아리만 부여잡고 그 고름 속을 어찌, 걸어오셨나 2018. 7. 22. 니즈 이번 주 내내 어깨가 처져있던 아들놈이 염려스러워, 주말 나들이를 가려했다 아내는 분명 동의했건만 당일 아들놈의 완강한 거부를 끝내 이기지못하고 되려 나를 탓했다 숙제며, 수행평가며 할 일도 많은데 아들 생각은 하나도 안 하고 마음대로 하냐고, 난 아들 놈을 위할 생각만 했지, 아들 놈의 상황을 전혀 이해할 생각이 없었구나. 늦은 깨달음이 따라왔다 다음주, 나는 단단히 준비했다 주일 내내 퇴근을 빨리 했고(물론 아들이 나보다 늦게 왔지만) 꼬치꼬치 캐묻고 연구했다. 결국 난 아들 놈의 소망을 알 수 있었고, 당장 실행에 옮겼다 학원을 끊었고, PC를 바꾸고, 용돈을 올렸다. 마누라의 성화에도 난 끄떡없었다. 아빠니까. 난 일상으로 돌아갔고, 아들 놈은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히키코모리라는 유행이라고 했다. 2018. 7. 22. 모서리 그늘의 경계로 겨우 알아본다 기둥 너머 꿈틀대는 새끼고양이 집을 빙 둘러보았다 민들레와 쑥부쟁이가 모서리를 지운다 창문 너머 공간은 명암이 없다 햇빛을 받으려는 듯 주변 빌딩은 높아져갔다 그늘 속에 잡초들이 죽어가듯이 이 집도 숨을 멈췄다 고양이, 귀뚜라미, 무당벌레, 움직임이 다들 하찮다 아니, 그들이 사는 공간이 하찮다 그렇게 저 위의 사람들은 내려다보겠지 한껏 날이 선 모서리가 두려워서 나 또한 돌아섰다 2018. 7. 12. 역지는 사지 나를 싫어하던 그 녀석도 무서운 건 있었다. 동네에서 두 살 많은 형, 어릴 적부터 덩치가 컸던 형은 여전히 두꺼운 팔로 위압감을 뿜었다. 내 뒤에서 끊임없이 뒤통수를 때리던 그 손이 멈춘 건 고작 그 형이 내 이름을 불렀기 때문이다. 이젠 내가 그 녀석을 싫어할 차례였다. 생각보다 그 놈은 힘이 없었고, 예상보다 그 형의 힘은 강했다. 쌓여있던 독기가 곪아 터진다. 나를 보는 줄도 모르고, 노래 불렀다. 그가 슬퍼하면 할수록, 춤을 추었다. 다들 즐거우리라 생각했다. 2018. 7. 10. 까까머리 12 mm, 아니 4 mm로 해주세요. 엉겨 붙은 채 무더기로 떨어졌다. 내 상념과 바꾸기에 적당한가. 못난 두상, 잡념이 하나 추가된다. 그 누나는 FTA와 머리카락을 바꾸었다. 이 후, 머리카락이 계속 자라났듯이 FTA도 그냥 진행되었다. 까까머리들의 집단 속에서도 우리는 멀리서 서로 알아보았다. 겨우 그 정도. 촛불 속에서, 종종 머리카락도 타올랐다. 신념, 한 올 한 올이 꼬여있는 단단함. 난 그저 슬픔과 맞바꿨다. 그러니 금세 자라지 수치심, 앞을 가리기 위해 머리를 길렀다. 온통 흰머리인 줄도 모르고 늦가을, 세상 모든 것이 버려질 때에 그냥 버려버리자, 자연히 썩어가도록. 2018. 7. 10. 이전 1 ··· 10 11 12 13 14 15 16 ··· 29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