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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교육 칼럼

[에세이] 평가의 슈뢰딩거 고양이

  양자역학의 세계에서는 상자 속의 고양이의 생사에 관해 묘한 이야기를 던져준다. 그 전말은 이러하다. 속이 보이지 않는 상자 속에 1시간이 지나면 깨질 확률이 50%인 청산가리가 든 유리병과 고양이가 함께 있다. 1시간 후 고양이는 어떤 상태일까. 이 질문에 대한 양자역학의 대답은 상자를 열어서 확인하기 전까지 고양이는 살아있는 상태와 죽은 상태가 공존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상자를 열기 전까지는 생사를 알 수 없다는 것이 아니다. 말 그대로 두 가지 경우가 모두 공존하는 상태라는 말이다. , 살아있으며, 동시에 죽어있는 상태라는 말인데 언뜻 이해가 쉽지 않다. 이 패러독스에 대한 나의 빈약한 해석은 아주 작은 미시 세계에서는 상자를 열어서 보는, 즉 관측을 하는 행위 자체가 대상에게 아주 큰 영향을 주기 때문에 관측을 하는 행위 전의 상태를 확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상자 속의 고양이 상태는 상자를 여는 행위를 하는 순간 그 행위에 의해 확정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상자를 열기 전까지 절대 고양이의 상태를 알 수 없지만 상자를 열었을 경우에도 상자를 열기 전의 고양이를 알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가 아는 것은 오직 상자를 연 후 고양이의 상태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현재를 개선하여 더 나은 미래를 만들고자 한다. 어떤 행위도 목적성 없이 일어나지 않으며, 특히 정부에서 진행하는 정책들은 나라의 미래를 위해 많은 전문가들이 심사숙고한 결과일 것이다. 그 정책들 가운데 늘 등장하는 것 중 하나가 교육 관련 정책이라는 점은 교육이 나라의 미래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 영역인가를 증명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교육이 바른 길을 가기 위해 여러 주장이 펼쳐지지만 그 중 가장 치열하고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영역이 바로 평가와 관련된 영역인 것 같다. 수능 과목 편제, 정시와 수시 비율, 성취평가제, 내신 등급, 사교육 방지, 생활기록부, 자유학기제, 고교학점제 등 많은 이슈들은 결국 평가와 관련되어 있다. 하지만 이러한 논쟁들이 향하는 방향은 순수한 평가 자체의 공정성과 타당성과는 거리가 있다. 평가 이면의 무엇, 평가의 결과로 얻게 되는 손익관계에 보다 많은 초점이 맞춰져 있다. 우리나라에서 평가는 의미 있는 교육을 통해 배운 지식과 경험을 확인하는 성장의 디딤돌이 아니라 고통스러운 교육의 결과 얻게 되는 자산이며 성공을 위해 전략적으로 사용되어야 하는 도구로 전락해버렸다. 동시에 너무 많은 이권이 침입하여 무엇이 옳은 것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다수의 이해관계에 따라 무력하게 흘러가고 있는 상황이다.

수시를 강화하면 생활기록부의 공정성에 휘말리고, 정시를 강화하면 공교육 약화, 부의 세습 같은 이슈들이 따라오는 현실은 학교에서 진행하는 평가가 교육활동의 확인과 피드백이라는 기본적 기능과는 무관하게 오직 입시에 사용되는 자료로서의 기능만이 강조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모순적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끊임없이 평가의 형태-지필과 수행, 서술형과 논술형 등-와 평가의 기록-생기부 교과세부능력 특기사항의 글자 수와 같은-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고 개선방법이 쏟아지고 있다. 그렇다면 평가의 방법과 형태 등이 바뀌면 교육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가? 나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하게 평가를 받는 사람들이-학생뿐 아니라 학부모까지- 슈뢰딩거의 고양이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평가의 변화에 긴밀하게 대응하고 학생의 진정한 능력과 잠재력을 확인하고자 하는 시도에 반응하여 다른 모습으로 관측되는 존재인 것이다. 평가가 입시와 연계되는 한, 또한 입시가 사회적 성공의 잣대로서 여전히 역할을 수행하는 한 그들은 계속 슈뢰딩거의 고양이로 남아있을 것이며, 어떤 시도도 아주 작은 성취 이외에는 얻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절대 제대로 알 수 없다고 판단한 교사들은 결국 어떤 시도도 진정으로 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 상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교육 정책과 끊임없이 지속되는 사회의 비판으로부터 많은 교사들이 더 이상 의욕을 가지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 어둠 속으로 스며들고 있는 상황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교육이라는 허울만 남고 내용물이 하나도 남지 않을 것만 같은 위기감이 느껴진다. 교육은, 평가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

교육이 결국 학생의 성장을 위한 일이라면 평가는 그 성장의 결과를 학생 스스로 확인할 수 있는 일이어야 한다. 그 결과가 다시 입시에 사용되더라도 평가 자체가 입시를 의식하고 이루어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평가가 평가다워지기 위해서는 평가 자체의 안정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평가를 하는 주체, 즉 교사가 스스로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하고, 평가를 받는 학생들도 충분히 그 방식을 예상하고 준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현재와 같은 잦은 변화는 평가의 안정성을 무너뜨리고 의외성을 높임으로써 평가의 결과에 연연하는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고 있다. 인기에 영합한 정치인들이 선거 때마다 교육정책을 들고 나오는 상황이 없어져야 한다. 성적과 생기부 내용으로 민원이 들어오면 아무 저항도 못하고 바꿔주기 바쁜 학교 현장도 바꿔야 한다. 모든 교육활동을 정해지지도 않은 진로와 연계하여 의미를 찾으려 하는 조급증도 버려야 한다. 진정 의미 있는 교육은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진 다음 알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다리는 법을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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