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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문화/나의 시

깜박깜박

급히 가려 고속도로를 탔다.
부족한 시간을 어떻게든 속력으로
매꿔보려고, 과속을 할 속셈이었다

차는 가다서다를 반복한다는
교통방송과는 달리 서다가다섰다.
주로 멈춰있는 고속도로 풍경은
꼭 시간이 정지한 상태와 같았다.
이 도로 위 사람들은 어떤 생각들로
이 정적을 채워나가고 있을까

시간의 틈을 메워보려던 시도를 포기하고
비어있던 생각의 공간으로 빠져든다.

와중에 `칼치기'를 시도하는 놈이 보였다.
너구나, 이 정체의 원인.
시야 속의 외제차를 찾아본다.
많구나, 경제가 어렵다며.
무작정 차선을 바꾸며 밀어붙이는 화물차.
깡패새끼네, 깜박이는 어디갔니.

당최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다.

순간, 경적이 울렸다.
돌아오는 정신의 속도 보다
자동차의 움직임이 빨랐다.

충격과 함께 드는 분노,
문을 열고 나갔다.
절대 봐주지 않으리라.
이 미개하고 교양없는 인간들에게
용서란 사치스런 행위이다.

따지려는 내 손짓 밑으로 하얀 선이 보인다.
내 차의 오른쪽 깜박이가 깜박이고 있었다.
도대체 언제 내가 차선을 바꿨던가
본능적 처세는 감정보다 빨랐다.
집게 손가락만 보이던 내 손은
어느새 환하게 웃으며 아래위로 흔들렸다

집으로 가는 길에는 대한민국에
실망할 겨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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