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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문화/나의 시

이사

 

쫓겨나듯 이사를 한다.

바퀴벌레 수십 마리가 바닥과 천장에서 군무를 추고,

지렁이와 개미의 혈투가 매일 벌어지는 곳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어둠의 군단은 이제 낮도 까맣게 물들이며

작은 내 공간을 잠식해버렸다.

앉을 곳도 설 곳도 없다.

도망치듯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잔고를 탈탈 털어 보증금을 지불한다.

새로운 집, 비록 새 것은 아니지만,

창이 있고 빛이 드는 밝은 집

저 멀리 나무가 보이는 곳에서 누우리라,

벽에 기대리라.

 

첫날, 조용하고 고요하다.

둘째 날, 고요하고 아늑하다.

셋째 날, 아늑하고 평안하다.

사람이 사는 곳이다.

사람만 사는 곳이라고 믿었다.

 

오늘 밤, 여전히 천장에서 춤추는 바퀴와

싱크대 주변 하루살이의 비행을 보며

침입자가 누구인지 깨닫는다.

 

※ 사진출처 : https://pixabay.com/photo-1017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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