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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문화/나의 시

저어새

왼발이 깊게 빠져 들어 올리려는데

더욱 깊이 오른발이 파고든다.

뻘은 쉽게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저 고개가 바쁜 저어새를 보라고

똑바로 쳐다보라고

 

새는 하늘보다 땅에 오래 머물렀다.

반짝이는 윤슬 속 물고기의 눈을 찾기 위해

창공의 구름은 바다에만 머문다.

순리대로 휘저어지는 주걱 질에도

새는 허리를 펴지 못하고 걸음만 옮긴다.

옆의 새도 계속된 허탕 질에 걸음만 바쁘다.

 

물이 들어온다.

나가야지, 그리고 날아올라야지

내 갈 길, 제 갈 길 다르겠지만

아쉬움을 뒤로 하고 떠나야 할 순간을 함께 맞이한다.

 

백색의 날개가 향하는 방향으로 한참을 들여다본다.

서쪽 어디론가 가겠지, 생각했더니 노을을 뒤로 하고 동쪽으로 향한다

 

이런, 길을 잃었나보다. 거긴 도시야, 너희가 살 곳이 아니야

 

새가 답변을 하듯 고개를 흔든다. 먹이를 잡던 움직임이 아니다.

부정의 흔듦, 또는 긍정의 흔듦.

동쪽은 너희들만의 공간이 아냐.

동쪽엔 아이들이 있고, 남동유수지가 있고, 인공 섬과 친구들이 있어.

 

높은 빌딩 위로 훨씬 더 높게 날아가는 새들 뒤로

석양빛이 밀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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