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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문화/나의 시

그 방

 

그 방을 뒤덮은 것이 똥인지, 피인지, 진흙인지 알 수 없었다.

그 방은 이미 오래되었고 낭자한 자국은 이미 검붉었다.

냄새마저 말라버린 공간, 그 검붉음을 따라 시선을 옮긴다.

욕실, 마른 벽, 건조한 물기, 그 속의 흠뻑 젖은 사람.

 

잘 아는 사람, 떠나보내지 못하는 사람

 

그 분은 가끔 통화하면서도 미안해 했다.

부탁을 들어주면서도 고마워했고, 항상 허기가 졌다.

허기의 대부분은 나로 인해 생기고 채워지고,

하지만 특별히 내가 한 것은 없다.

 

조금 늦을 줄은 알았지만, 너무 늦었다.

그가 하나 둘씩 잃어갈 때, 나는 하나 둘씩 채우느라

오직 나만 바라보느라

그 방이 색칠을 하고 똥칠을 해도 그리고 그 색이 지워지고

냄새마저 사라져도, 조금 더 여유가 있다고 믿었다.

 

죄가 무겁다. 색감이 살아나고, 향기가 돋아나고,

갑자기 뚜벅뚜벅 그 분이 들어오신다.

나는 움직이지 못한다. 두고두고 벗어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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