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학&문화/나의 시

작은 용기

주변이 어두워진다

미처 일을 끝내지도 못했는데

떨어진 온도만큼

사기가 떨어져 나가는 계절이다

 

우선은 미룬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내일은 또 내일로

점점 미루다 보면

내 일이 남아나려나

 

그 걱정도 내일로

날이 가면 해도 길어지겠지

 

미래를 위한 현재를

살아가기엔 너무 버겁다

부족한 것을 꼽아본다

우선 시간, , 마음의 여유

다들 부족한 것이 나도 부족하다

그러니 무엇이 문제겠는가

문제는 어차피 사방에 널려서

굳이 주워 담지 않아도

옷이며 신발이며 덕지덕지

붙어 따라 다닐텐데

 

너무 무거워지기 전까진

괜찮다

 

겨울 이불 속에서

빠져나오는 작은 용기

그것만으로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가슴 속 작은 용기는

내가 숨을 쉬는 한

계속 비워지기만 해서

나는 매번 그 작은 용기를

겨우겨우 쥐어짜 내 이불에서 나오고

버스를 타고, 출근을 하고

내일로 내 일을 미뤄가며 퇴근을 한다

 

용기를 용기에 담는 것도

용기에 용기가 담겨 있는 것도

모두 쉽지 않다

 

내일이 왔다

다행히 이 계절은 해도 게을러서

나보다 늦게 일어난다

나는 어울리지도 않게 일출을 보며

미리 준비했던 즙을 입안에 털어 넣고

그 속에 든 작은 용기로 몸을 녹인다

 

나가자

 
반응형

'문학&문화 > 나의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발아  (0) 2023.10.16
벚꽃이 지는 계절  (0) 2023.04.08
가에서 하로 간다  (0) 2023.01.27
자동차로 사는 비행기  (0) 2022.09.23
팔굽혀펴기  (0) 2022.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