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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문화/나의 시

자동차로 사는 비행기

공항이 가까운 곳에 산다

그러니까 바다가 가깝고,

하늘을 자주 올려다보는 곳에 산다

비행기 소리가 들리면 나도 모르게 올려다보고

아직은 손바닥 크기 정도인 비행기를 향해

닿지 못할 손을 뻗게 되는 그런 곳에 산다

 

비행기의 목적지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아내는 모든 비행기가 목적이였다

떠난다는 것, 새로운 장소와 만난다는 것

그곳에서 스스로 새로워지고

또 새로운 삶이 탄생하는 기분

 

아내는 그 기분을 좋아했다

터널 같은 비행기를 지나면

맞은편 끝에서는 늘 새로운 곳이

아내를 기다리며 빛을 발하고 있었다

 

뱃속에서부터 시작된 기다림은

생각보다 더 길어졌다

아내는 기름이 없이도 굴러가는

신기한 자동차였지만 조금씩

삐걱거리고 망가져 갔다

반복된 고난과 기다림 속에서도

아내는 하늘을 보며 땅을 지탱했다

질척이는 땅 위에서도

오롯이 허공을 응시하며

비행기는 자동차로 살아갔다

 

오늘도 김포에서 이륙한 비행기가

머리 위로 날아간다

아들들은 이제 저들의 손으로

비행기를 가리킬 수 있었고

아내는 조금 더 오래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나는 조용히 아내의 뒤로 걸어가서

양팔을 들어 올린다

땅에서만 맴돌던 비행기가

드디어 이륙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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