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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교육 칼럼

[9화] 적성과 흥미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그러면서도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살고 싶어 한다. 우리는 그것을 아주 간단한 두 단어로 표현하는데 바로 적성과 흥미이다. 적성과 흥미를 찾아야 한다는 말은 아주 오래전부터 늘 지겹도록 반복되어 강조되어 왔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 교육계는 적성과 흥미의 또 다른 표현인 꿈과 끼를 키우는 교육과정을 강조하고 있지만 그 역시 의도대로 잘 흘러가지는 않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현재에 불만족하고, 교육의 무용성을 들먹인다. 대학에서는 늘 전과, 편입, 재입학 등이 수시로 반복되고, 졸업 후에도 전공과 무관한 일을 하는 사람이 부지기수며, 힘들게 취직한 직장에서도 여전히 이직을 희망하거나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는 사람들이 많은 현실은 그 꿈과 끼, 적성과 흥미를 찾는 것이 지난한 일이라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너무나 쉽게 적성과 흥미를 강조하는 것에 비해 그 구체적 실현 방법에 대해서는 정확한 답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성공한 사람들의 개인적인 방법론들은 넘쳐나지만 그 방법론들은 일반성이 없어 보인다. 결국 현실은 성공한 사람들보다 실패한 사람들이 많고,(사실 그렇지 않다면 성공이란 단어가 주는 의미도 바뀔 것이다.) 여전히 갑론을박은 계속된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적성과 흥미라는 것이 철저히 개인에 따라 다른, 일반화 할 수 없는 무언가라면 그것을 찾은 방법론도 일반화 할 수 없을 것도 같다. 그리고 성공이라는 기준도 다를 것이기에 굳이 어떤 방법론이 성공적이다, 라고 판단할 수도 없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럼에도 우리는 어떤 삶이 성공적이다,라는 기준을 가지고 있으며, 동시에 자신의 삶에 대해서도 동일한 기준으로 성공과 실패의 여부를 따진다. 보통은 그 기준을 충족하기가 쉽지 않다. 성공의 기준이 남에게서 비롯된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학생들과 상담을 하며 특기와 취미에 대한 얘기를 자주 한다. 아마도 그 적성과 흥미를 완곡하게 보여주는 것이 특기와 취미이기 때문이리라. 특기는 적성, 취미는 흥미와 연계된다. 그런 기준으로 보면 대한민국의 대부분의 학생들은 취미와 적성이 비슷하다. 별로 다르지 않다. 취미는 음악 감상, 영화 감상, 독서, 운동, 게임, 여행 정도의 범주에서 그친다. 없는 학생들도 부지기수다. 요즘은 생기부를 고려해서 거창하게 말하는 친구들도 있지만 실상 거기서 거기다. 교육계를 비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공부하느라 시간이 없기 때문이라며 쉽게 할 수 있는 입시 위주의 교육계를 비판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경험상 이런 현상은 공부와는 별로 상관이 없다. 그냥 학생들이 보통 하는 활동이라는 것이 그 정도의 범주에서 밖에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학생들뿐 아니라 성인들에게 취미를 물어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은 그런 범주 속에서 이루어진다. 사람들이 즐겨 할 수 있는 일들이 그런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취미가 흥미와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면 취미, 즉 흥미를 고려한 직업 선택의 폭은 넓지 않다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인가. 쉽게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직업군은 늘 경쟁이 치열하다.

  학생들에게 특기를 물어보면 정형화된 대답이 즉시 나오는 취미와는 달리 보통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이다. 그 중 자주 듣는 얘기는 특기라고 할 정도까지는 아니라는 표현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 중 잘하는 편이지만 그것을 잘하는 다른 사람들보다는 못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특기라는 것이 좀 그렇다. 남들한테 특기라고 말하고자 한다면 남들보다 잘해야 할 것 같은 것이다. 그런데 어떤 일이든 자신보다 잘하는 사람은 의례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주저한다. 그것이 과연 나의 특기라고 말할 수 있는가. 자기 검열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런 심리 작용 때문인지 특기가 없다,라고 하는 학생들도 늘 절반은 된다. 남들과 비교하여 잘하는 것 말고 스스로 그냥 하는 일 중에 자신 있는 것을 이야기해라고 설득에 설득을 해야 겨우 답변을 하는 친구들이 많다. 한편으로 특기는 어떤 종목 비슷한 무엇이라고 생각을 하는 경향이 강해서 세세한 재능들이 표현되지 못하는 것도 있을 것 같다. 아무튼 특기가 적성과 관련되어 있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절반 정도는 적성이 없는 것일까.

  우리나라의 학생들 대부분은 흥미와 적성이 없다,라고 내가 주장한다면 사람들은 나를 아마도 엄청 무지하고 편협한 인간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학생들의 꿈과 끼를 키워줄 생각은 안하고 오히려 없다,라고 단정하고 또다시 입시 위주, 지식 위주의 수업이나 하겠거니 생각하며 비판할 것 같다. 물론 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만의 적성과 흥미가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런 것 따위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도 안되는 주장을 할 생각은 없다. 다만, 그것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를 고민할 뿐이다. 쉽게 교사들을 비판하는 사람들의 주장처럼 꿈과 끼, 적성과 흥미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개발해야할 무언가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개발과정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서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 교사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처음에 언급했지만 어떻게 키워줄 것인가, 그것이 명확하지 않은 것이다. 너무 많은 주장이 난무하고, 책임만 추궁하는 현 교육 상황에서 일개 교사로서 나는 어떤 믿음을 가지고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가. 그런 고민은 실제로 도움을 줘야하는 교사의 입장에서 당연한 고민이며, 쉽게 해결이 나는 것도 아니라 많은 교사들이 안고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정말 어떻게 해야할까.

  나는 이 문제에 대해 일관된 방법론은 없다고 믿는다. 다만 교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을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는 없다. 그리고 학생들이 쉽게 동화될 수 있는, 사회와 유행에 민감한 적성과 흥미가 아닌, 진정한 적성과 흥미를 찾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고통이 따른다고 믿는다. 그러한 고민의 결과물, 역사적으로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지식이라고 여겨지는 것을 모아둔 것이 교육과정이라고 믿는다. 국가교육과정과 큰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에서 학교 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든, 필요 없다고 생각하든 그러한 가치 판단 자체가 공교육에서 비롯된 것이다. 체계적, 합리적 사고는 내용 없이 이루어질 수 없다.

  학생들이 자신의 적성과 흥미를 찾기 위한 가장 원초적인 방법은 사회의 모든 것을 다 경험해보는 것이다. 그리고 판단하면 된다. 그런데 가능한 일인가? 당연히 불가능하다. 다만 간접적으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경험 중 가장 핵심이 교육과정이다. 제대로 공부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그 필요성에 대해 가치를 논하는 것은 너무 교만한 행위이다. 무언가의 가치를 알기 위해서는 그 무언가를 깊게 들여다보아야 한다. 요즘은 꿈과 끼라는 말 속에 숨어 조금만 하기 싫거나 자신이 없는 것은 자신과 맞지 않다고 쉽게 치부해버리는 것 같다. 그렇게 죄다 버리다보면 무엇이 남는가.

  여담이지만 흥미와 적성의 가치를 따지자면 나는 흥미라고 생각한다. 흥미를 가지고 지속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적성을 찾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적성은 스쳐가는 기적처럼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얼마간의 기대와 확신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땅을 파다보면 발견하게 되는 유전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유전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많은 지식과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것을 버텨낼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아마도 흥미일 것이다. 단순한 쾌락이 아닌.

  세상의 많은 것들을 그런 흥미를 가지고 바라볼 필요가 있다. 적성은 그 다음에 나타나는 열매일 뿐이므로, 당장 할 수 있는, 또는 해야만 하는 일들에 흥미를 가지고 보자. 무조건 나와 인연이 없을 것이라 여기며 밀어내지 말자. 혹시 모른다. 내가 몰랐던 재능을 발견할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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