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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학칼럼

[책]생물과 무생물 사이_후쿠오카 신이치

 

 

 저자는 1959년 태어나 교토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에서 박사 과정과 박사후과정, 연구원 등을 지내다

현재 일본에서 교수로서 재직 중이다. 전공은 분자생물학이며 과학저널리스트로 상도 받으셨다.

이 책의 느낌은 전반적으로 소탈한 감상과 회상이 어우러진 과학교양책인 것 같다.

노쿠치 히데요에 대한 생각, 박사후 과정에서의 어려움, 미국 생활에서의 적응 과정 등은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과정을 겪게되는 많은 대학원 진학생들에게 좋은 교훈을 주는 것 같다.

 

내용적으로 들어가보면 이 책은,

 "생물과 무생물을 구분하는 것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한 과정이다.

 

그 질문에 대답하기 위한 첫 과정은 '바이러스의 발견'이다.

노쿠치 히데요에 대한 회상으로 시작되는 부분은 자연스러우면서도 어쩌면 인위적인 느낌도 들지만

문장력이 훌륭하여 크게 의식되지는 않았다.

'바이러스'를 가장 처음 등장시킨 이유는 아마도 보통 사람들이 직관적으로 생각하는 생명이란

"생식을 통하여 새로운 생명을 창조할 수 있는 그 무언가"라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그 사실이 합당한가,라는 질문을 바이러스를 통해 던진 것이다.

 

※ 사진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_바이러스(원본 사진 주소 : http://scienceon.hani.co.kr/283903)

 

직관적으로 무생물에게 없지만 생물에게 있는 것을 생각해보면 식물은 씨앗, 동물은 새끼라는 답변이

가장 우선이 아닐까? 또는 움직일 수 있다, 먹이를 먹는다. 등의 단순한 대답도 등장할 것이다.

그러면 바이러스는 어떤 존재인가?

DNA에 의한 자기복제 시스템이 생명에게 아주 중요하다는 사실은 차치하고서라도

생명이 세포 차원에서 "자기를 복제하는 시스템"이라면 즉 복제의 메커니즘 자체가

생명을 정의할 수 있는 무엇이라면 바이러스도 "생명체"라고 불러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에 의하면 실제 이 부분은 아직까지도 논쟁의 여지로 남아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왜 논쟁거리인가?

이유는 바이러스는 자기 복제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단독으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바이러스는 세포에 기생해야만 복제가 가능하다.

또한 영양을 섭취하는 법도 없으며, 호흡도 하지 않는다.

물론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도 않을뿐더러 노폐물을 배출하는 일도 없다. , 일체 대사를 하지 않는다.

게다가 특수한 조건에서 농축하면 '결정(結晶)'으로 만들 수도 있다.

바이러스는 생물과 무생물 사이에서 방황하는 그 무엇이다.

이렇게 마무리 지어지는 첫 이야기는 자연스레 DNA의 등장을 암시한다.

 

※ 사진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_DNA(원본 사진 주소 : https://dnatesting.com/)

 

생물학의 역사에서 고작 네 종류의 뉴클레오티드로 이루어진 DNA

생명의 유전 정보를 담당하는 역할을 수행하기에는 너무 단순하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처음엔 거의 대부분의 학자들이 단백질을 유전정보의 주체라고 생각하였으며

단백질의 복잡한 구조를 생각할 때 가장 처음 의심받아 마땅하였다.

물론 오늘날 컴퓨터가 겨우 01의 조합으로 엄청난 정보를 기술할 수 있고,

어떤 면에서는 그 편이 고속으로 움직이기에 보다 효율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당시에는 아직 정보의 코드화에 대한 생각이 자리 잡지 못한 시기였다.

그러던 중 "오즈월드 에이버리"라는 매우 성실하고 근면한 과학자에 의해

DNA가 유전 정보의 핵심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일단 주체가 누구인지 알아내었다면 그 방법과 특징을 밝히는 것도 자연스런 수순이다.

그 치열한 연구전쟁에서 승리한 사람이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밝힌 왓슨, 크릭, 윌킨스 이다.

물론 그 보상은 노벨상이었다.

이 부분에서 저자는 꽤 매몰찬 어투로 그 과정을 평가하는데

번뜩이는 감각으로 왓슨과 크릭이 이중나선에 대한 공동논문을 밝혀냈지만

그 결과를 지지할 수 있는 실험을 하고 그 결과를 분석했던 것은

로잘린드 프랭클린이라는 물리학자라고 한다.

그녀는 X선 결정학 전공으로 이를 통해 DNA의 결정 구조를 밝히는 실험을 진행했다.

이러한 실험은 말이 쉽지 엄청난 정신과 육체 노동을 수반한다.

지루하고 반복적인 작업이 필수인데 과학계의 역사에서 상당히 많은 중요한 발견이

이러한 중노동의 대가로 밝혀졌다.

그리고 그러한 노동의 상당수가 여자들에 의해서 이루어졌다고 한다.

어쨌든 그 반복 노동과 정밀한 계산의 결과로 밝혀진 DNA의 결정 사진은

프랭클린의 상관이었던 윌킨스에 의해 왓슨과 크릭에게 넘어갔고 역사적인 이중나선이 발견되었다.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모르지만 친히 자서전까지 써가며 자신의 천재성을 주장한 왓슨이

그리 도덕적이라고 생각하긴 힘들다고 저자는 판단한 것 같다.

직접적으로 나쁜 놈이라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 사진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_왓슨과 크릭

 

앞의 두 이야기는 결국 생물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자기복제 시스템"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하지만 저자는 그리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도 학계도 그리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래서 뒷부분에 나오는 이야기야 말로 이 책의 주제다.

결론부터 정리하면 "생명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흐름 속에 질서를 창조한 동적 평형 시스템이다"

중요한 단어는 '동적 평형'이다.

이것은 이 책의 주제이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인간 사회 전반의 사상적, 역사적 진리이기도 하고,

많은 물리적 법칙들의 실체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동적 평형이란 말 그대로 흐름 속에서 평형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흐름은 왜 생기는 것인가?

간단히 말하면 우주적 법칙이기 때문이다. 엔트로피의 법칙,

반드시 무질서도가 높아지는 방향으로 세계는 변해가야 한다.

생명과 같은 고분자 결정체는 그러한 우주적 법칙을 거스르는 존재이다.

인간은 무려 80년 가까이 그러한 질서를 창출하고 유지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이 이야기의 초반에 등장하는 슈뢰딩거의 질문은 무척 신선하다.

"원자는 왜 그렇게 작은가?"

이 질문에 대한 저자의 평도 무척 재미있다.

본문을 옮겨보자.

 

[원자는 왜 그렇게 작을까?

'특이한', '사람을 무시하는 듯한' 질문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그리고 생명현상과는 도대체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분명 개개의 원자는 아주 작다.

원자의 지름은 대체로 1~2옹스트롬이다.(중략)

생명현상을 관장하는 최소 단위인 세포조차 그 지름은 거의 30~40만 옹스트롬이며

여기에는 어마어마한 수의 원자가 포함되어 있다.(중략)

슈뢰딩거는 개괄적으로 설명한 후 분명히 질문을 반전시키고 있다.

, 원자는 왜 그렇게 작은 것일까요?

이는 분명 다소 교활한 질문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사실 지금 제가 문제 삼고 있는 것은 원자의 크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금 제가 궁금한 것은, 사실은 생명체의 크기, 특히 우리들 몸의 크기에 대해서 입니다.(중략)

이처럼 우리들의 질문의 진정한 목적은, 두개의 크기를 비교하는 데 있다는 것이 밝혀졌으니,

독립적인 존재로서의 원자가 엄연히 먼저 존재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좀 전의 질문은 사실 이렇게 바뀌어야겠지요.

"우리 몸은 원자에 비해 왜 이렇게 커야만 하는가?"라고 말입니다.]

 

※ 사진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_ATOM

나로서는 슈뢰딩거와 같은 생각을 현시대에서도 못했으니 그야말로 부끄럽기 그지없다.

다행스럽게도 저자는 슈뢰딩거의 질문에 답을 해주고 넘어간다.

우리 몸은 왜 이렇게 큰가?

이유는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최대한의 정밀도를 확보하기 위함이다.

결국 우리 몸도 원자로 이루어져 있고 원자는 자연계의 기본적인 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다.

열운동에 의해 무작위적으로 운동하며 그 결론은 통계적으로 산출된다.

 

이 통계적이라는 것이 중요한데 통계적인 것은 무조건 표본이 많을수록 정밀도가 올라간다.

생명이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어떤 시스템을 구축하고 진행시키는 데 있어 예외적인 행위를 하는

, 통계에서 평균값을 벗어나는 입자의 빈도는 평방근의 법칙(루트의 법칙)을 따른다.

 

예를 들어 100개의 입자가 있다면 10개의 입자가 평균에서 벗어난다.

만약 100만개 있다면 1000개의 입자가 평균에서 벗어난다.

두 경우를 비교해보면 오차율이 10%에서 0.1%로 현저하게 떨어짐을 알 수 있다.

결국 생명체는 그 구성입자가 많을수록 자신이 구축한 시스템에서 예외적인

행동을 하여 그 시스템에 영향을 주는 입자의 비율을 최소화 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이러한 해석은 결국 왜 아주 작은 단세포 생물도

그렇게 많은 원자로 구성되었는지 알려주는 지표가 된다.

이후 쇤하이머는 방사성 동위원소를 이용한 실험으로 생명체의 단백질을 추적한 결과

분자차원에서 봤을 때 생명은 끊임없이 새로운 분자로 대체되고 있음을 증명하였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분자차원에서 1년 뒤에 만난 사람은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 한다.

 

이러한 끊임없는 흐름이 시사하는 것은 생명이 앞서 언급한 자연의 기본법칙,

엔트로피의 법칙에 대항하는 매커니즘을 설명한다.

생명은 스스로 흐름을 만들고 끊임없이 버림으로써 자연스럽게 확산되어야 할

우리 신체의 일부분을 먼저 미리 제거함으로써,

, 무질서를 스스로 만듦으로써 질서를 유지한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 사진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_Entropy

 

다시 말하면 "생명은 흐름 그 자체다"라고 결론지을 수 있다.

흐름 속에 우리는 존재하고 끊임없이 변화하며 적응한다.

흐름은 결국 시간의 함수이다. 생명은 시간의 함수이다.

 

작가는 소설같은 에필로그를 통해 자신의 자연관을 밝힌다.

"우리는 자연의 흐름 앞에 무릎 꿇는 것 외에, 그리고 생명을 있는 그대로 기술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과학자가 한 말이라기에 너무 자조적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생명과 자연에 대한 겸허한 자세를 보여주는 멋진 자세라고 생각한다. 끝.

 

※ 사진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_N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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