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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문화/좋은 시

구름 해설_고은

by 손아무 2017. 2. 25.
술 깼어 2천년이나 묵은 동아시아 넋두리 하나 있어

생야 일편부운기요
사야 일편부운멸이라

더러 내 입에도 발려나와
이것으로 제법 세상을 얼러보았어
과연 그럴까
태어남이 살아옴 살아감이
한 조각 이는 구름이요
억울하게시리
세상살이 작파해야 하는 것 그것이
한 조각 구름 사라짐인가

상여 나갈 때 상여 앞귀에 내건 구름 운자도
황천길 가 저승 구름 되었다가 이승의 비로 내려온다는 그것인가

구름이라
구름이라
한 조각 구름이라
때론 상서로운 구름 자색 구름
때론 이팔청춘 푸른 구름
때로는 미친 구름
때로 달 묻어
흉흉한 밤
대궐에 무슨 변고 있을 구름이라

동아시아나
서아시아나
유라시아나
이따위 제 앞가리기 구름 노릇이다가

19세기쯤
한 허름한 영국 촌녀석이
하도  하도
구름에 들린 나머지
날이 날마다
구름 보다가
구름 일어나는 것
구름 스러지는 것 보고 보다가
서른살에 이르러
대오각성
마침내 구름 이름 하나하나 지어내느니

낮은 구름 층운이라
높은 구름 권운이라
무슨 구름 적운이라
무슨 구름 적란운이라
이토록이나 구름 이름 지어놓으니
그 숱하디숱한 구름들 감응하여
꿈속에도 두둥실 나타나
나 적운이야
권운이야
층운이야

이로부터 나라마다
그 이름 불러주느니
사람들도
층운 장녀
권운 차남
적운
적란운 이종사촌으로 태어나더군

나도 덩달아 한마디 어깃장 놓아보니

생야 일편부운멸이요
사야 일편부운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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