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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문화/좋은 시

슈뢰딩거 방정식_김병호

슈뢰딩거 방정식

                                                                                    김병호


지난밤 내 토사물이 실재 냄새를 풍기더라도 내가 여기 있거나 바람이거나 없는 것처럼
여자도 수탐타 마을에 있을 확률이 70이 넘지만 산길 웅덩이이기도 하고 150MB짜리
파일이기도 한 여자는 눈길 닿는 곳 어디에도 그림자가 떠돌아
나는 떠난다 나의 목덜미 할퀴는 성욕 없인 여자는 없고 여자의 그림자들을 수탐타 마을로 모을 수 없고
마을이 애당초 생기지 않을 수도 있다 여자의 딱딱한 오해 없이는 내 가죽 안의 질량도 각자 고향으로
흩어져버린다 소문은 대개 정확했다 길 위에서 나는 세 줄의 물결이기도 하다가 속 터진 작은 짐승의
시체였다가 지나는 사람의 속옷을 아무 흔적 없이 벗기기도 하며 마을에 도착하자 거기는 폐허뿐이었다
분명 머리카락 길게 자라고 통통하게 살 올랐을 겨드랑이도 신 벗으면 수줍게 오르던 발냄새도 거긴 없었다 누군가의 관심이 남기는 잔해들만 혹 제자리로 돌아올지 모르는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여자에 대한 나의 관심도 수많은 모습으로 꿈틀거리는 여자의 그림자들을 증발시키고 그저 죽어 있거나 살아 있을, 돌이킬 수 없는 끝장을 부를 걸 알지만 다시 레부르로 떠났다 내가 다가가면 여자는 붕괴했고
레부르엔 태초부터 혼자였던 無밖에는 없었다 전화가 왔다 내가 서울서 코피 흘리며 쓰러져 있다고 여자가 요동치고 있다고, 여자는 여기도 있고 저기도 있거나 나는 여기서 죽고 동시에 멀리서 내동댕이쳐진다 그래서 시간은 자기가 누군지 모르고 딴 짓만 한다 비웃고 있다.
- '과학인문학'(글항아리) 에 수록된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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