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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문화/책과 영화

[책]역사란 무엇인가_E.H.Carr

 

 저자 Edward Hallett Carr1892년 영국에서 태어나 케임브리지 대학의 트리니티 칼리지를 졸업하고

1916년 외무부에 들어갔다. 1936년까지 약 20년 동안 외교관으로 근무한 뒤 웨일스 대학의 교수로서

국제 정치학을 강의하고 런던 타임스의 부주필로서 언론활동을 했으며 1948년에는 국제연합의 <세계 인권선언>기초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였다. 이 후 1953년 옥스퍼드 대학에서 정치학을 강의하다가 1955년 모교인 케임브리지 대학으로 돌아가 고급연구원으로 있으며 역사학을 강의하였으며, 이 책은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19611월부터 3월에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강연한 것을 묶어 같은 해 가을에 출판한 책이다.

 

내가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저자의 배경을 나열한 것은 이 책의 교훈을 실천하기 위해서이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제대로 그 책을 이해하기 위해선 그 책의 저가가 살아온 환경과 그 책을 집필할 당시의 사회적 상황 등을 모두 고려하여야 한다. 이것은 이 책의 중요한 주제 중의 하나이다.

 

중학교 국사시간이었던 것 같다. 역사란 "사실로서의 역사""기록으로서의 역사"로 나누어진다고.

있었던 사실 그 자체로서의 역사와 역사가의 의도가 담긴 역사, 그 둘이 모두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또 인정해야 올바로 역사를 볼 수 있다는 것이 그 국사시간의 핵심적 내용이었다.

지금에 와서는 학교에서 누구나 배우는 상식이지만 이 진리가 받아들여지기까지 많은 역경이 있었으며, 지금도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제대로 현실에서 적용되지는 않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 사진 출처 : https://pixabay.com/photo-2518264/

 

 

저자는 1장과 2장을 할애하여 역사에 있어서 상대주의적 측면을 강조하지만

궁극적으로 저자가 바라는 것은 단순히 모든 역사가 중요하다는 사실은 아니다.

단순히 기록으로서의 역사가 가지는 편협성과 비합리성을 인지해야 한다는 점이다.

실제적 사실들 중 역사가가 어떤 사실을 선택하고, 또 배제할 때,

그 과정에도 역사가는 역사 밖에 초연히 서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일부로서 기록하기 때문에

역사적 자료를 사용할 때 충분히 이 사실을 고려하고 비판적으로 수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책의 핵심은 3장부터 시작된다.

1, 2장은 우리의 사고를 넓히기 위한 포석에 지나지 않는다.

시대적으로 이 책은 포스트모더니즘이 등장하여 한창 주가를 높이고 있던 시기이다.

이 책을 쓴 저자조차도 시대적 상황을 벗어나지 못한 고민을 저술했다고 할 수도 있겠다.

 

저자는 자연 과학과 역사(및 사회학 등의 인문학)의 비교를 통해 주장을 강화한다.

절대적, 기계적 세계관을 가진 당시의 과학도 절대적인 진리는 없다고 하는 상황에서

뒤늦게 출발한 사회과학이 너무 쉽게 일반화하고 법칙을 생산하고 있다고 저자는 판단했다.

그리고 그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 사진 출처 : https://pixabay.com/photo-388075/

 

과학은 미래를 보는 학문이다.

가장 중요한 기능은 예상과 예측, 그로인한 자연의 활용과 생활의 편리이다.

이것은 과학자들의 순수한 의도와 상관없이 과학이라는 학문에게 일반 대중이 기대하는 측면이자 필요로 하는 측면이고 과학에게 많은 힘을 실어줄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천대받던 과학이 국가의 가장 중요한 학문으로 변모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기능적 이유에 기인한다.

 

그렇다면 역사는 어디를 보는가? 기본적으로 역사는 당연히 과거를 본다.

과거에 일어났던 사실에 대한 학문이다.

그렇다면 역사가들은 왜 과거에 있었던 일을 분석하고 기록하며 정리하는가?

역사가가 역사를 기록하는 이유는 사실 과거에 있지 않다. 오히려 미래에 있다.

역사의 패턴, 규칙, 일반화를 통해 무언가 앞날을 예측하려는 노력의 결과인 것이다.

역사는 과거를 통해 미래를 지향하는 학문이며 그렇기에 필연적으로 가치라는 것이 개입하게 된다.

역사를 저술한 저자들의 상황과 판단이 중요한 것은 그러한 가치가 도입되었기 때문이며,

결과야 어떻든 역사가는 자신의 판단으로 미래를 위한 과거를 남기는 것이다.

하지만 미래를 내다보기 위한 학문이 되기에는 역사의 대상이 인간이라는 장애가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자연과학에 비해 역사의 대상인 인간은 결코 일반화의 틈에 빠지지 않고 자기수정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 사진 출처 : https://pixabay.com/photo-902483/  러쉬모어 마운틴

 

 한 예를 살펴보자.

아담 스미스의 경제 법칙에 등장하는 '보이지 않는 손'은 분명 산업화의 초기, 소규모의 개인 사업이 주류를 이르던 시기에는 충분히 그 위력을 발휘하였다.

 즉, 법칙일 수 있었다.

하지만 몇 개의 독점 자본가의 등장으로 힘없이 그 기능을 상실하기도 했다.

각자가 자신의 이득을 취득하며 균형을 유지한다는 것은 동시에 항상 서로 조금씩 손해를 본다는 의미이다. 대규모의 자본을 가진 사람이 취하는 이득은 개인사업자가 한 번에 감당할 수 있는 손해의 한계치를 훨씬 넘어버리기 때문에 공정한 경쟁이 될 수 없으며 보이지 않는 손은 그 어떤 중재에도 성공하지 못한다. 그렇게 자본은 계속 모일 수밖에 없다. 도박에서 돈 많은 사람이 이기는 것과 같은 원리라고도 할 수 있다.

 

 4장에서 진보로서의 역사를 말하는 저자는 지난날의 영광에 사로잡혀 발전이 없는 당시 영국의 보수주의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한다.

당시 영국의 학자들은 변화를 싫어하였고, ‘-불 해협에 폭풍우가 오면 대륙이 고립된다.’라던 시절의 향수에 취해 여전히 오만방자한 상태로 과거만을 예찬하고 있었다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었고, 그 편협함으로 인해 빠르게 변화하는 세계 환경의 변화에 대처하지 못할 수 있음을 경고한다.

 역사는 변화하는 인간사에 대한 학문이며, 동시에 인간사는 계속 변할 것이라는 전제, 그리고 그 변화는 분명 진보하는 방향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저자로서는 당시 영국사회는 걱정 가득한 사회였나 보다.

진보한다는 믿음 없이 펼쳐지는 비관론과 회의론, 극상대주의는 결국 불평이외의 것을 남기지 못할 것이다.

 

저자의 마음을 담은 내용을 옮기며 감상을 마친다.

 

"나 자신은 여전히 낙관주의자이다. 네이미어 경이 정강이나 이상은 피하라고 경고할 때, 오크쇼트 교수가 우리는 특별히 어디로 가는 것이 아니며, 중요한 것은 보트를 흔드는 인간이 없도록 경계하는 일이라고 말할 때, 포퍼 교수가 조촐한 단편적인 공학을 사용하여 저 사랑스러운 옛 T형 포드 차를 언제까지나 몰고 다니기를 원할 때, 트레버로퍼 교수가 절규하는 급진파의 콧등을 때릴 때, 그리고 모리슨 교수가 건전한 보수주의의 정신으로 서술된 역사를 위해서 웅변을 토할 때, 나는 격동하는 세계, 전통 때문에 갈등하는 세계를 바라보며 어느 위대한 과학자의 오래된 말을 빌려서 답할 것이다. '그래도 - 그것은 움직인다'라고."

 

※ 사진 출처 : https://pixabay.com/photo-413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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