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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문화/나의 시

포장마차 이야기

그 날은 노량진 고시촌 골목 한 쪽 포장마차에

이른 저녁부터 죽치고 앉았다.

친구 놈이랑 며칠 잡다한 지식과 함께 쌓인

응어리 한 덩어리 안주 삼아 시간을 죽이던

그 날은,

어떤 아버지에게 한없이 얕은 개울을

헤엄치게 한 날이기도 했다.

그는 관광이외의 목적으로 한 번도 온 적 없던

- 수산시장이나 들려봤을까 -

낯선 서울의 가장 어두운 노량진 골목에서

자신의 가장 밝은이를 찾기 위해

몇 날을 헤맸다고 한다.

이불도 없는 고시원에, 주인 없는 캐리어를 벗 삼아

별도 없는 천장에게 그는 어떤 기도를 했을까

지쳐버린 그는 바로 뒤 테이블에서

사라진 아들과 닮은 내 친구를

오랜 시간 바라보았다.

우리가 그 시선을 의식하기 시작할 즈음

그는 소주 한 병과 먹다 남은 두부김치를

들고 다가왔다.

별 말도 없이 몇 번 테이블에 소주잔을

떨어뜨리는 동안에도 우리는 조용히

전달되는

그 나무껍질 같은 건조함과 아픔을 가만히

느낄 수밖에.

 

그 날, 친구는 아들이 되었다.

사챗돈, 공무원 시험, 여자 친구 등

빈 종이에 그리듯, 펼쳐놓았던 희망찬 이야기는

잠시간 아버지의 별이 될 수 있었을까

 

어두워지지 않는 노량진의 어두움은

별이 될 수 없지만, 그 날,

포장마차에서는 작은 우주가 펼쳐졌음을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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