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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문화/책과 영화

[소설]채식주의자_한강

 

 

채식주의자 _ 한강

 

 

여태 본 소설 중 판타지-무협을 제외하고 가장 빠른 시간 안에 읽은 것 같다.

 

워낙 글을 늦게 읽는 편이어서 한 권 읽는데 보통 일주일은 걸리는데 거의 하룻밤 만에

 

다 읽어버렸다.

 

그만큼 몰입도가 강한 소설이다.

 

 

얼마 전, 점박이물범 생태학교 프로그램으로 국립생태원에 방문한 적이 있다.

 

그 곳에서 독립 영화 '잡식 가족의 딜레마'를 만든 황윤 감독님의 강연을 들을 수 있었다.

 

그 때 그 분께서 구제역에 걸린 돼지들을 폐사하는 장면을 본 이후로 자연스레 채식주의자가

될 수 밖에 없었다, 라고 하신 말씀이 참 기억에 남았다.

채식을 하는 이유가 건강, 또는 고기의 냄새가 싫어서 등, 흔히 듣는 인간 중심의 이유가 아니라는

느낌과 함께 묘한 죄책감도 찾아들었다.

 

이 책, '채식주의자'의 주인공인 영혜 또한 같은 선 상에 있는 것이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영혜는 어떤 '꿈'을 계기로 완전히 육식을 끊게 되지만, 영혜가 말라가는 것은 채식을 하기 때문이

아니라 잠을 자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그의 전 남편은 고백한다.

영혜는 완전히 채식주의자가 되어 고기 냄새 조차 싫어하지만 꿈 속에서는 고기들의 피를 덮어쓰고

심지어 그 피를 먹기까지 한다. 현실에서도 병원 앞 공원에서 살아있는 새를 물어뜯기도 한다.

 

그녀는 동물에 대해 무한한 죄책감과 동시에 증오심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그런 양면성은 결국 공포다. 이 세상에 대한 공포. 그녀는 겁에 질려 있다.

그래서 잠들기를 두려워한다. 내면의 공포는 반드시 꿈으로 재현되기 때문에.

 

그녀는 현실 세계의 대부분에 대해 무감각하고 덤덤하다. 감정의 기복이 없는 듯 보이며

타인의 시선에 철저히 무관심하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가 현실을 초월했기 때문이 아니다.

단지 현실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을 뿐이다. 내면의 세계에, 꿈의 세계에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고 있을 뿐이다.

그런 그녀에게 현실을 강조하면 그녀는 잠시 현실로 돌아와 폭발하곤 한다.

 

아버지가 뺨을 때리고 강제로 고기를 입에 쑤셔넣었을 때, 정신병원에서 강제로 호스를 연결하여

미음을 주입하려고 했을 때 그녀는 잠시 현실로 돌아왔다.

 

처음에 육식만을 거부하던 그녀는 종국에는 식사 자체를 거부한다.

식물도 생명이다. 식물을 먹는 행위도 결국 다른 생명을 파괴하는 행위이며,

동시에 생산자인 식물을 섭취하는 동물임을 스스로가 인정하는 행위이다.

그녀는 햇빛과 물을 이용해 살아가고 싶다.

언니가 왜 죽으려고 하냐고 묻자 왜 살아야 하냐고 반문한다.

 

작품에서 그녀는 식물이 되고 싶어하지만 사실 그냥 무생물이 되고 싶어하는 듯 하다.

아니 무언가 되고 싶다기 보다는 생물로부터 멀어지고 도망가고 싶어하는 듯 하다.

 

언니의 남편, 형부와 온 몸에 꽃을 그리고 교접하던 날, 아마도 그 날

그녀는 자신의 그런 소망을 깨달은 듯 하다.

자신이 동물에서 식물이 될 수 있음을, 그리고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음을.

 

자신의 생명을 버리면서까지 철저히 다른 생명의 섭취를 거부하는 인간의 모습.

 

어린 시절, 자신을 문 개가 철저하게 아버지로부터 죽음을 당하던 모습을 목격한

순수한 영혼은 아마 그 때부터 생명의 무게에 대해 다른 생각을 품어왔던 듯 하다.

 

인간은 너무 많은 죄를 짓고 살고 있다.

 

영혜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한편으로 다른 길을 걷게 된 영혜에 대해 접근하는 주변 사람들의 다양한 방식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죄' 이외에 '인간에 대한 인간의 죄'를 연상시킨다.

 

고기 먹기를 강요하는 부모님과 남편, 이상한 부류로 낙인 찍어버리는 남편의 회사 동료들,

철저하게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도구로 대하는 형부, 자신을 유지하기 위한 존재의 이유로서

동생을 챙기는 언니까지..

 

각기 다른 이유로 그들은 영혜를 조금씩 더 인간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든다.

 

인간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주요 등장인물들은 결국 모두 헤어진다. 영혜와 남편, 언니, 형부, 부모님까지 모든 등장인물들은

서로 남이 되고 멀어진다. 기존의 관계가 없어진다. 영혜가 현실 세계로부터 멀어지듯이,

사실 다른 모든 인물들도 기존의 세계에서 멀어진다.

 

자신의 욕구와 욕망에 충실하면 결국 타자(모든 생물)는 멀어지게 되어 있다.

하지만 욕구를 실현하지 못하면 영혜와 같이 죽음을 맞이할 수 밖에 없다.

이것은 기독교의 원죄와도 같다. 피할 방법이 없다.

 

참 우울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영혜의 언니가 자식을 생각하며 겨우 현실의 끈을 잡고 버티는 모습을 묘사한 건 

작가의 생각에 아마 그것이 유일한 돌파구라고 생각하는 듯 하다. 조건 없는 사랑.

 

 

마지막으로 나의 생각을 적어보면,

다른 모든 생물도 마찬가지지만 인간 또한 어떤 목적이 있어 이 세상에 나온 것은 아니다.

 

환경단체와 밀렵꾼, 건설회사 등이 동시에 존재하는 모순적인 상황도 사실 이상한 것이 아니다.

강아지와 고양이, 다양한 생물에게 인간의 잣대로 윤리를 들이미는 것도 이상한 것이 아니다.

살아있는 개구리에게 돌을 던지고 잠자리의 날개를 찢고 사마귀에게 실을 묶어 조종하는

아이들의 모습도, 그 옆에서 징그러워 하는 다른 아이들의 모습도.

인간은 인간 자체로 수많은 생물종의 다양성을 확보하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은 지극히 당연한 자세로 서로 이상해보이는 행위들을 일삼고 있지만 인간은 원래 그런 생물인 듯 하다.

 

사슴에게 미안해하는 사자는 없다.

하지만 사슴에게 미안해하는 사자가 생긴다면 사자 무리가 굶어 죽을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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