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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문화/좋은 시

성에꽃_최두석 성에꽃 최두석 새벽 시내버스는 차창에 웬 찬란한 치장을 하고 달린다. 엄동 혹한일수록 / 선연히 피는 성에꽃 어제 이 버스를 탔던 / 처녀 총각 아이 어른 미용사 외판원 파출부 실업자의 입김과 숨결이 간밤에 은밀히 만나 피워낸 번뜩이는 기막힌 아름다움 나는 무슨 전람회에 온 듯 자리를 옮겨 다니며 보고 다시 꽃 이파리 하나, 섬세하고도 차가운 아름다움에 취한다. 어느 누구의 막막한 한숨이던가. 어떤 더운 가슴이 토해낸 정열의 숨결이던가. 일없이 정성스레 입김으로 손가락으로 성에꽃 한 잎 지우고 이마를 대고 본다. 덜컹거리는 창에 어리는 푸석한 얼굴 오랫동안 함께 길을 걸었으나 지금은 면회가 금지된 친구여. 더보기
내가 사랑하는 사람_정호승 내가 사랑하는 사람 정호승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 사랑도 눈물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 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 더보기
문득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이_오규원 문득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이 오규원 잠자는 일만큼 쉬운 일도 없는 것을, 그 일도 제대로 할 수 없어 두 눈을 멀뚱멀뚱 뜨고 있는 밤 1시와 2시의 틈 사이로 밤 1시와 2시의 공상의 틈 사이로 문득 내가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 그 느낌이 내 머리에 찬물을 한 바가지 퍼붓는다. 할 말 없어 돌아누워 두 눈을 멀뚱하고 있으면, 내 젖은 몸을 안고 이왕 잘못 살았으면 계속 잘못 사는 방법도 방법이라고 악마 같은 밤이 나를 속인다. - 오규원, 「한 잎의 여자」, 문학과 지성사, 1998 더보기
아, 입이 없는 것들_이성복 아, 입이 없는 것들 이성복 저 꽃들은 회음부로 앉아서 스치는 잿빛새의 그림자에도 어두워진다 살아가는 징역의 슬픔으로 가득한 것들 나는 꽃나무 앞으로 조용히 걸어 나간다 소금밭을 종종걸음치는 갈매기 발이 이렇게 따가울 것이다 아, 입이 없는 것들 더보기
[노래]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_김광석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_김광석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내 텅빈 방문을 닫은채로 아직도 남아 있는 너의 향기는 내 텅빈 방안에 가득한데 이렇게 홀로 누워 천정을 보니 눈앞에 글썽이는 너의 모습 잊으려 돌아 누운 내 눈가에 말 없이 흐르는 이 슬방울들 지나간 시간은 추억속에 묻히면 그만인 것을 나는 왜 이렇게 긴긴밤을 또 잊지 못해 새울까 창틈에 기다리던 새벽이 오면 어제 보다 커진 내 방안에 하얗게 밝아온 유리창에 썻다 지운다 널 사랑해 밤하늘에 빛나는 수많은 별들 저마다 아름답지만 내 맘속에 빛나는 별하나 오직 너만 있을뿐이야 창틈에 기다리던 새벽이 오면 어제보다 커진 내방안에 하얗게 밝아온 유리창에 썻다 지운다 널 사랑해 하얗게 밝아온 유리창에 썻다 지운다 널 사랑해 출처 유투브 : https://yo.. 더보기
몹쓸 동경(憧憬)_황지우 몹쓸 憧憬(동경) 황지우 그대의 편지를 읽기 위해 다가간 창은 至福이 세상에 잠깐 새어들어오는 틈새; 영혼의 인화지 같은 것이 저 혼자 환하게 빛난다. 컴퓨터, 담뱃갑, 안경, 접어둔 畵集 등이 공중에 둥둥 떠다니고, 천장에서, 방금 읽은 편지가 내려왔다. 이데올로기가 사라지니까 열광은 앳된 사랑 하나; 그 흔해빠진 짜증스런 어떤 운명이 미리서 기다리고 있던 다리를 그대가 절뚝거리면서 걸어올 게 뭔가. 이번 生에는 속하고 싶지 않다는 듯, 모든 도로의 길들 맨 끝으로 뒷걸음질치면서 천천히 나에게 오고 있는, 그러나 설렘이 없는 그 어떤 삶도 나는 수락할 수 없었으므로 매일, 베란다 앞에 멀어져가는 다도해가 있다. 따가운 喉頭音을 남겨두고 나가는 배; 그대를 더 오래 사랑하기 위하여 그대를 지나쳐왔다. 격..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