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학&문화/좋은 시

수제비_도종환

수제비


                                        도종환


둔내장으로 멸치를 팔러 간
어머니는 오지 않았다.
미류나무잎들은 사정없이 흔들리고
얇은 냄비에선 곤두박질치며
물이 끓었다.
동생들은 들마루끝 까무룩 잠들고
1군 사령부 수송대 트럭들이
저녁 냇물 건져 차를 닦고 기름을 빼고
줄불 길게 밝히며
어머니 돌아오실
북쪽길 거슬러 달려가고 있었다.
경기도 어딘가로 떠난 아버지는 소식 끊기고
이름지을 수 없는 까마득함들을
뚝뚝 떼어 넣으며 수제비를 끓였다.
어둠이 하늘 끝자락 길게 끌어
허기처럼 몸을 덮으며 내려오고 있었다.
국물이 말갛게 우러나던 우리들의 기다림
함지박 가득 반짝이는 어둠을 이고
쓰러질 듯 문 들어설 어머니 마른 멸치 냄새가
부엌바닥 눅눅히 고이곤 하였다.

반응형

'문학&문화 > 좋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모의 기도_ 반 부덴  (0) 2016.08.11
담쟁이_도종환  (0) 2016.08.11
아버지의 마음_김현승  (0) 2016.08.11
내가 나에게 안부를 묻다_장순익  (0) 2016.08.11
슈뢰딩거 방정식_김병호  (0) 2016.0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