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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하

이사 쫓겨나듯 이사를 한다. 바퀴벌레 수십 마리가 바닥과 천장에서 군무를 추고, 지렁이와 개미의 혈투가 매일 벌어지는 곳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어둠의 군단은 이제 낮도 까맣게 물들이며 작은 내 공간을 잠식해버렸다. 앉을 곳도 설 곳도 없다. 도망치듯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잔고를 탈탈 털어 보증금을 지불한다. 새로운 집, 비록 새 것은 아니지만, 창이 있고 빛이 드는 밝은 집 저 멀리 나무가 보이는 곳에서 누우리라, 벽에 기대리라. 첫날, 조용하고 고요하다. 둘째 날, 고요하고 아늑하다. 셋째 날, 아늑하고 평안하다. 사람이 사는 곳이다. 사람만 사는 곳이라고 믿었다. 오늘 밤, 여전히 천장에서 춤추는 바퀴와 싱크대 주변 하루살이의 비행을 보며 침입자가 누구인지 깨닫는다. ※ 사진출처 : https://pix.. 더보기
땅굴 반 쯤. 내려간다, 땅속으로 조금 간다. 매일. 천적을 피해, 땅 굴로. 약간 어둡지만 안전한 곳으로 지열은 미약하지만 나를 덥히고 햇빛은 다정하다. 스무 살 쯤, 그 집은 공포였다. 발을 디뎠으나 땅은 아니었다. 철골과 시멘트로 포장한 공중 감옥에서, 불안하기만 한 하루의 합으로 생을 영위했다. 좁은 상자로 음식을 나르듯 날아다니던, 그 시절, 다행히 오래가지 않았다. 자본은 자신보다 높은 것을 싫어하는 듯, 조금씩 나를 끌어내렸다. 난 땅이 좋았고, 땅에 발을 디딘다는 것이 좋았고, 안전한 곳이 좋았고, 한 번쯤 나무의 뿌리와 사는 상상도 즐겼고, 내려감에 취해있었다. 좁지만 복잡하지 않고 어둡지만 무섭지 않은 안식처는 동경해 바라마지 않는 로망이다. 어둑해진 저녁, 조금 더 어두운 그 곳으로 내려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