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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진

밤 같던 낮 구름이 너무 짙어 해가 달처럼 보이던 날, 밤 같은 낮이 계속 되던 그 날, 고씨는 그 날도 밤 같은 낮을 보내고 있었다. 도시 전체에 드리워진 어둠 속으로 조용히 걸었다. 운동복 차림에 덥수룩한 머리카락을 보는 이가 없다. 삐죽삐죽 삐져나온 빛의 틈을 가끔 경계하며 신나게 걸었다. 바람과 함께 떠밀려온 모래 알갱이들을 씹으며, 거리를 느낀다. 자신 이외에 지나치게 밝은 도시를 고깝게 쳐다본다. 아래에서 위로, 위에서 아래로. 사육신공원에서 당당히 한강을 본다. 또렷이 노려본다. 거뭇하여 보이는 것 없지만 분명 한강이다. 저 강으로 돌아가려 했던 그 밝았던 날도 떠올려 본다. 그래, 고작 그 정도의 화려함이야. 이미 지나간 과거잖아. 나도 지나갔고, 또 지나가겠지만 너도 그렇잖아. 한강은 말이 없다. 그.. 더보기
포장마차 이야기 그 날은 노량진 고시촌 골목 한 쪽 포장마차에 이른 저녁부터 죽치고 앉았다. 친구 놈이랑 며칠 잡다한 지식과 함께 쌓인 응어리 한 덩어리 안주 삼아 시간을 죽이던 그 날은, 어떤 아버지에게 한없이 얕은 개울을 헤엄치게 한 날이기도 했다. 그는 관광이외의 목적으로 한 번도 온 적 없던 - 수산시장이나 들려봤을까 - 낯선 서울의 가장 어두운 노량진 골목에서 자신의 가장 밝은이를 찾기 위해 몇 날을 헤맸다고 한다. 이불도 없는 고시원에, 주인 없는 캐리어를 벗 삼아 별도 없는 천장에게 그는 어떤 기도를 했을까 지쳐버린 그는 바로 뒤 테이블에서 사라진 아들과 닮은 내 친구를 오랜 시간 바라보았다. 우리가 그 시선을 의식하기 시작할 즈음 그는 소주 한 병과 먹다 남은 두부김치를 들고 다가왔다. 별 말도 없이 몇 .. 더보기